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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01. 2024

만나면 좋은 사람

만나면 좋은 사람


 사람으로 태어나면 무수히 많은 사물과 무수히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남은 계속 이루어진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요 거자필반(去者必反)이다. 불교처럼 시간을 길게 보았을 때는 이 원리가 딱 맞지만,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은 좋은 인연은 끝까지 지속하지만, 나쁜 인연은 칼로 무 자르듯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것이 일반 사람의 일상사다. 만남이 불행인 경우가 있고 만남이 행복인 경우가 있으며 첫 만남이 좋았다가 시간이 갈수록 만남이 부담되는 것도 있고, 처음 만남이 미미하지만 만남이 더해질수록 돈독해지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홀로 독립할 수 없기에 만남을 외면할 수는 없다. 만남에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만남이 있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만남이 있다. 만나면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는 선택형이 대부분이지만, 선택 불가(不可)도 있다. 선택 불가의 대표가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은 선택 불가이기에 ‘운명(運命)’이라 했다. 좋은 만남이든 나쁜 만남이든 선택할 수 없다고 했는데 최근에 부모는 자식을 선택한다. 즉 인공 임신중절 때문이다. 과거에도 유산(流産)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임신이 되면 삼신할머니에게 감사하며 자식을 낳았지만, 현대는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존중하여 자식을 선택한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선택할 수 없어도 대부분이 좋은 만남에서 출발하여 좋은 관계로 끝맺음하는 것이 부모 자식의 관계이다. 신문 지면을 통해 불행한 사건이 보도되지만, 가족만큼 소중한 만남도 없다는 생각이다. 선택 불가의 만남이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의 최고봉이다.     

  프랑스 사상가 사르트르는 ‘Life is B and D’라고 한다. B(Birth), D(Death)의 중간이 C이다. C(Choice)는 선택이라 한다. 삶 자체가 선택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주체성 있는 선택을 할 때 삶의 가치가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선택적으로 만나서 좋은 사람 대표적인 3가지를 살펴보면. 첫째가 부부의 만남이고 둘째가 친구의 만남이고 셋째가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만나서 아름다운 부부의 바탕은 무엇일까? 신라 시대에는 원효 스님과 요석 공주의 결혼, 무열왕과 김유신 여동생의 결혼, 서동요와 선화공주의 결혼을 보면 부분적이지만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성이 매우 자유롭고 근친혼도 아무런 제약 없이 다양하게 선택한 결혼 풍습이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결혼 풍습을 이어받아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근친 간의 결혼이 유행했고 여자 3형제가 왕에게 시집가는 역사를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 이념이 강화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한정되면서 신분제에 따른 결혼 선택권이 한정되어 가문과 가문의 연결이 결혼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다. 과거에 부부의 만남은 현재와 같이 선택에 자유가 적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현대는 남녀평등을 기반으로 개인의 선택에 아낌없는 총력전을 펼친다. 부분적으로는 사랑의 선택보다 조건의 선택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을 기반으로 좋은 조건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조건의 선택이란 기준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의 눈높이에 순응하고 현실적 안락함과 미래에 경제적 부족함이 작은 것을 고려하여 반듯한 직장과 높은 연봉, 외모의 반듯함, 부부가 서로 기울지 않은 조건이 형성되어야 좋은 결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완벽한 만남은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현실에서 늘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아보면 이런 조건보다는 부부가 소통이 잘 되고 자식 낳아 사회에 잘 적응하게 기르고 음양의 원리에 따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서로 공경(相敬如賓)하고 경제적으로 너무 빈곤하지 않고 남에게 손 가락 질 받지 않는 부부가 아름다워 보인다. 부부간의 아름다운 만남이란 살아가면서 소통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격의 기반을 갖춘 사람이 부부의 연(緣)을 맺으면 가장 아름다운 부부의 만남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친구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 삶을 살아가는데 친구가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친구 없이도 잘 살아간다. 오히려 불필요한 자금을 지출하지 않아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삶의 질이나 삶에 여유, 행복을 느끼려면 좋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크나큰 행운이다. 과거 농업 사회에서는 같은 또래가 서로 협동하며 살아가기에 친구보다는 자기들만의 가치관을 공유한 공생이란 측면이 더 강했다. 너무 이기적이 아니면 능력이 출중하든, 능력이 모자라도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공통된 가치관을 공유하며 살았다. 산업사회가 도래하고 교육이 확대되면서 좁은 의미의 친구가 형성된다. 소통이 잘 되고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서 이해관계로 모였다가 이해관계를 떠나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을 아름다운 친구라 한다. 나이도 같거나 거의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이고 사고의 틀도 비슷한 사람이 모여야 다툼이 적어서 오래간다. 최근 정보화 사회는 통신이 발달하면서 취미생활이나 공통된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이버 친구들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친구는 만나서 부대끼며 추억을 만드는 친구라야 진짜 친구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중간한 친구 관계는 자동으로 정리가 된다.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좋은 인연을 맺을 아름다운 만남의 친구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다.     

 일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아름다운 만남이란 어떤 만남일까? 부모 자식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스승님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주변 사람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다. 내가 혜택을 받았거나 혜택을 주어서 보은(報恩)의 관계는 계약적인 모습이 보이기에 제외하자. 나이와 상관없고 만남의 횟수와도 상관없이 가슴 깊이 잠겨있는 애절함, 설렘, 흐뭇함, 만남이 거듭할수록 신비함을 주는 삶의 향기가 물씬 풍겨 나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만남의 대상은 연인의 관계도 있을 수 있고 같은 동성(同性) 중에 특별한 사람도 가능하다. 영국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이거나 이루지 못한 아쉬움의 사랑이 아니라 현실에서 자주 볼 수도 있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자기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 불륜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현듯 생각나서 전화하면 거리낌 없는 대화가 오가고 술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어도 싫어하는 내색이 없고 지갑이 없고 치장하지 않고도 쉽게 만날 수 있고 상대의 약점이 많이 보여도 상대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사람이라 마음이 편하고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가끔 상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면 새겨들을 수 있는 말이 많아 상대의 말이 기다려지면 더 좋다. 밤에 누워 잠들기 전에 그대를 떠 올리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사람이 한 사람쯤 있어야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 만나면 좋은 사람의 바탕이 배려와 공감이다. 이런 기대감은 허상일까?     

삶은 과정만 있을 뿐 결과가 없다. 그래서 잘 살았다. 못 살았다. 평가는 하지 말자. 다만 피드백을 위해 성찰이 필요할 뿐이다. -윤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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