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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03. 2024

옷에 대한 단상(斷想)

옷에 대한 단상(斷想)


 인간 삶의 근본적 문제가 의식주(衣食住) 해결이다. 셋 중에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자리매김할까? 순위를 정하기는 힘들지만 단어 순서대로 옷, 먹는 것, 거주로 추정해 본다. 각자 사람의 생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예상하지만, 인간 삶의 역사를 보면 이런 순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자연에 의존하든 시절의 이야기다. 자연재해에 인간의 힘이 미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치산치수(治山治水)’가 국정 과제의 최고 높은 과제였다. 인간의 지혜는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개발로 소소한 자연재해를 극복하여 가난에서 벗어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얻게 되었다. 현대에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의식주 해결이 무난하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전쟁이 휴전되는 시기에 세계 최하위 경제로 해외원조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던 나라이다. 1960년대를 소년으로 보낸 필자도 ‘꽁득 보리밥’만 먹어도 가난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할아버지 생신이라야 고깃국을 맛볼 수 있었고 남의 집 잔치나 장례식이 있으면 삶은 돼지고기 한 점 먹을 수 있던 시절이다. 할아버지가 문중에 연세 많은 어른이라 문중에서 제사 음복으로 가져온 음식에서 기름에 튀긴 음식을 한 입이라도 먹으면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1970년 ‘새마을’ 운동으로 통일벼가 등장하면서 쌀밥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 옷이 날개다 ‘란 속담이 있다. 좀 고급스러운 옷을 입으면 사람이 달라진다. 조선시대에도 성인이 되는 ’ 관례(冠禮)’를 치를 때 성복(盛服)의 순서가 있다. 옷 입는 품격을 중요시하는 장면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키가 작은 것을 보완하기 위해 여자는 긴치마를 입었고 남자는 정장(正裝)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다 조상의 지혜가 돋보인다. 현재는 우리 옷을 ’ 한복‘이라 하고 특별한 행사에 입는 예복이 되었고 서양 옷을 일상복으로 입는 추세이다. 일반 남자 직장인은 양복이 정장이 되었다. 그래서 유행에 따라 신상품을 입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아침 출근길 옷차림은 매우 다양하고 세련된 모습이 한국인의 옷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다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있어 옷에 대한 관심도 많고 옷 종류도 많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가정에는 옷방(dress room)이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외출복 몇 벌이 장롱 안에 모셔준 것이 전부인데 이제는 모임이나 활동에 따라 옷을 달리 입어야 한다. 취미 생활에도 옷을 갖추어 입어야 한다. 등산복 따로 있고 골프 옷이 따로 있어야 하고 결혼식에 갈 때와 장례식 갈 때 입는 옷이 따로 있어야 한다.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사치로 보인다.     

 고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다. 한 달에 회비 일만 원을 모으는데 내가 돈 관리 총무로 당첨되어 돈 관리를 하고 있다. 돈을 모아 처음으로 살아계신 부모님 생신 선물도 하고 장인, 장모님들 생신 선물도 챙겨드렸다. 다음으로 본인들 생일을 챙겨주었고, 다음 해에는 아내의 생일 선물로 축하해 주고 결혼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주었다. 최근에는 신축년에 친구들 ‘회갑’ 잔치로 꽃다발과 케이크를 전부 선물했다. 지금은 아내들 회갑을 챙겨주고 있다. 이런 일을 내가 돈을 관리하다 보니 내 손에서 선물이 배달하니 마음 넓은 친구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내 생일에 많은 선물을 챙겨준다. 친구에 따라 큰 액수의 선물도 받는다. 올해 생일에는 케이크와 과일, 고기,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다.     

 아내와 백화점 상품권으로 무엇을 할까 상의하다가 나의 겨울 잠바를 하나 사자고 한다. 기실 최근 겨울에는 오리털 패딩 하나만 입으면 겨우내 따뜻하게 지내기에 다른 옷이 필요 없다. 아내가 결혼식 다닐 때 입을 수 있는 옷을 장만하려고 백화점으로 갔다. 5년 만에 백화점을 와 보았는데 여자들 옷값이 생각보단 비싸다. 늘 아내가 사 준 옷을 입었기에 옷값을 당연히 몰라야 할지도 모른다. 아내는 여러 가지 옷을 입어보고 벗으면서 쉽게 선택하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옷값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개입하여 좀 고급스러운 옷을 우격다짐으로 결재하고 지하 식당으로 갔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식당에서 음식 기다리며 아내는 너무 비싸다고 미안함을 표시한다. 교사 36년 차 월급에 그 정도는 충분히 입을 수 있다고 하면서 더 이상 옷 가격을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다.      

 날씨가 쌀쌀하여 목욕탕에 가서 씻고 저녁 식사 후 나의 지난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육 남매 막내로 태어나 형님 누나들의 옷이며 학용품을 물려받아 유년 시절을 보내도 불평보다는 행복했단 생각이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 새 옷을 장만해 주는데 육 남매가 되니 번갈아 사 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새 옷을 안 사 준다고 항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는 둘째 형님이 서울대학교 다니며 ‘표준전과’ ‘표준 수련장’을 선물 받아 성적이 상위권에 들 수 있어 마냥 기쁘기만 한 시절이었다. 중학교 진학하면서 운동화와 교복, 체육복이 있으면 다른 외출복이 필요가 없었다, 학교 행사 말고는 어디 여행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친구들과 가까운 곳에 여행 가도 사복 대신 교련복을 입고 가도 부끄럽지도 않았고 불편함도 몰랐다. 대학 시험 치고 친구들과 여행 가려니 사복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교련복 입고 갈 수도 없었다. 두 살 많은 형이 군대 가면서 남겨둔 사복을 입고 다녔다. 키 차이가 좀 나서 항상 좀 적은 옷을 입고 다녀야 했다. 대학 입학하면 보통 부모들이 양복 한 벌과 다수의 옷을 사 주지만 우리 부모님은 가난한 살림이라 미쳐 그런 것을 준비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면바지 하나 목티 하나 잠바 하나로 대학 4년을 버티었다. 양복이 필요하면 형님의 양복을 빌려 입는데 1년에 몇 번 되지 않았고 입사 면접에도 그 양복을 입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면 옷이 늘 같았다. 그냥 검소한 생활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딸이 의류학과에 진학했다. 한 번도 의류학과 쪽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쪽으로 전공을 선택한 것이다. 졸업 후 미국에 수출하는 의류회사에 취업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옷의 견본을 가끔 가져다준다. 나이 회갑 넘어 잘 어울리지 않지만, 딸의 혼과 정성이 들어갔다고 생각해 열심히 입고 다닌다. “선생님 패션이 참 특별하십니다 “라고 말해 주는 학생도 있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선생님이 되었다. 딸 바보라서 그런 것 같다. 부모의 DNA를 닮았는지 아들이 혼자 살아도 옷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들이 취업할 때 양복 한 벌 사 준 것이 전부이다. 무엇을 입고 다니는지 궁금하지도 않다. 유전의 힘이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대부분 사람이 자동차가 있어 추위나 더위를 느끼지 않아도 되지만, 옷은 더 고급스럽다. 종전에는 집에서 나와 버스 타고 걸어서 출근했지만, 현재는 아파트에서 나와 바로 자동차 타고 출근하면 냉난방에 잘 되어 있어 옷이 크게 필요 없어도 더 고급스럽고 세련된 옷을 많이 입는 것 같다. 좋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런 삶이 신의 축복을 받고 사는 모습일 것이다.

                                                 2023. 11. 27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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