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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05. 2024

건망증

건망증     


  기억(記憶, Memory)이란? 뇌에 받아들인 인상, 경험 등 정보를 간직한 것, 또는 간직하다가 도로 떠 올려내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모든 정보를 기억할 수 없기에 자신의 편린(片鱗)을 모아 자신의 성격, 개성, 특성을 만들어 자신을 규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물론 자신의 정체성이 기억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유전적 특징(DNA)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기억은 무한하지 않으므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잊어버리기 쉽고 생존적 지식을 전달하는 한계가 있기에 문자를 만들어 기록하여 후 세대에게 중요한 지식을 전달하였다. 현재는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무한대의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유년기, 청년기에는 기억이 매우 중요하다. 경험된 바를 많이 기억하면 할수록 학업이나 실제 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각인(刻印) 현상이 뚜렷하여 한번 입력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은 특징도 있다. 보통 사람들은 6세 이전의 일은 기억을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본능에 충실한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청소년기에는 엄청난 양의 학습된 지식을 저장해야 한다. 많이 저장하고 출력이 잘 되는 사람은 우월감으로 살아갈 수 있다.     

 청장년이 되면 기억된 바를 잘 응용하고 창의적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옛 격언에 ‘됫 글 배워 말글 쓴다 ‘ ’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의 열등생‘이라는 말이 기억의 활용적 측면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중년이 되면 새로운 경험에서 얻어지는 기억보다는 반복된 기억이 많아 뚜렷한 경험적 사실을 암기(暗記) 하기는 힘들고 지나간 일들을 추억(追憶)으로 간직하는 경우가 많다.     

 노년기에는 기억보다는 망각(忘却)이 많아진다. 어쩌면 신이 내린 최고의 축복이 망각일지도 모른다. 오랜 기간 축적된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 모두 저장되어 있다면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점이 많을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즉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망각 증상이 현실적 일에 맞닿으면 치매(癡呆) 환자가 된다. 인간 정체성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다. 기억을 저장하고 출력하는 곳이 뇌(腦)이다. 뇌에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삶을 사는데 애로사항이 있다. 작은누나가 뇌 수술을 받았는데 과거의 생각은 아주 또렷하게 하는데 현재의 판단이 어려워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을 보았다.     

 젊은 시절에도 아주 가끔 있는 일이지만 노년기가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찾아오는 것이 건망증이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출산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한다. 기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치매는 아니지만, 건망증도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부담을 준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건망증은 TV 리모컨 찾기다. TV를 보면서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컨을 찾는데 왼손에 들고 찾는 일이 자주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스크다 외출할 때 집 밖에 나왔다가 다시 집에 가서 마스크 쓰고 나오는 일, 휴대전화 주머니에 넣고 온 방을 다 뒤집어 찾는 일, 음식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냄새 때문에 가서 보면 냄비 태우는 일, 화장실에 가서 왜 내가 화장실에 왔지? 하는 일은 너무 많고 소소한 일이라 친구에게 이야기하여도 반응이 없다. 모두 다 한 번씩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건망증에 시달리는 본인은 치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안 받아도 되는지 결정이 쉽지 않다.     

 건망증을 해소하기 위해 뇌 활동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아내는 만 55세가 넘으면, 병원 가서 뇌 영양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라고 한다. 의료보험이 적용되기에 저렴하고 주변 사람들이 많이 복용한다고 한다. 나는 뇌 영양제 복용을 거부했다. 부모님이 임종하시기 몇 시간 전까지 정신이 말짱하였고, 외부의 도움으로 건망증을 보완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뇌 건강을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독서를 많이 하면서 다양한 활동보다는 단순화 작업에 열중했다. 리모컨을 아무 곳에나 두지 않고 항상 일정한 곳에 놓아두기, 주변 물건을 정리하기, 음식을 만들 때는 한 곳에만 집중하기, 약속 많이 하지 않기, 기록하기 등이다. 그러나 기록하기는 생활화하려고 하였으나 습관이 되지 않아 실패했다. 이런 노력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은 건망증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별로 없었다. 단순화한 생활로 오히려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경우가 많아 기쁨으로 생활했다. 건망증으로 행하여지는 일상적인 행동은 평소에는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망증으로 인해 큰일이 일어나면 되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삶에 치명적인 일들도 많으리라.      

 10월 26일 출근하여 교문을 들어서는데 “아차” 하고 짧은 신음이 났다. 오늘 졸업 앨범 교직원 단체 사진 촬영하는 날이다. 정장을 입고 촬영에 임해야 하는데 깜빡 잊어먹고 출근한 것이다. 나이 많은 걸 표식 하는 것도 문제지만 내가 3학년 학년 부장할 때 정장 차림이 아닌 선생님들을 미워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두렵기까지 했다. 잠시 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토요일, 일요일에 가사에 전념하다가 생겼다고 변명해 보지만 근본적인 것은 건망증 때문이다. 이것은 가벼운 것에 불과했다. 11월 8일 서울에서 결혼식이 있어 차표 예매를 했다. 그런데 차표를 11월 1일 것을 했다. 실수가 아니라, 청첩장에서는 11월 8일로 보고 주변 사람에게 공지도 11월 8일로 했는데 내가 차표 예약은 11월 1일로 한 것이다. 11월 1일 아침 6시 10분 발(發) 서울 가는 고속버스다.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다가 갑자기 오늘 등산 모임이 있는데 등산하러 못 가겠다고 문자를 하려다가 결혼식이 11월 8일을 상기시켰다. 멋쩍게 웃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서울까지 가서 예식장에 갔으면 얼마나 창피할까? 허허허 헛웃음을 웃고 차표 예약을 취소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차 놓쳤느냐고 물으면서 차 운전하여 서울 가라 한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려니 아내라도 부끄럽다. 한참 있다가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등산 가방을 메고 등산 약속을 이행했다. 큰 일지만 축소하여 작은 일화(逸話)라 여기며 웃었다.     

                            2020. 11 월 2일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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