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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12. 2024

애인 같은 아내

애인 같은 아내          

‘아내 같은 애인, 애인 같은 아내’

내 나이 43살이다. 공자(孔子)가 말한 불혹(不惑)의 나이이다. 불혹의 나이에 애인과 아내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난 요즘 새로운 삶을 배우며 사는 느낌이 든다. 아내와 애인은 엄연히 구분되고 다르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아내가 애인 같고 애인이 있으면 아내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아내를 호칭할 때 마누라, 와이프, 집사람이 아니라 옆지기란 말을 자주 쓴다. 늘 옆에서 나를 잘 아는 존재란 뜻이니 얼마나 좋은 말인가. 아내 같은 애인, 애인 같은 아내!!!      

 나는 아내와 결혼을 1990년 1월에 했다. 그 전에 2년 정도 교제하다가 내가 직장이 안정되자 결혼했다. 아내에게도 고백했지만 정말 사랑하기에 결혼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는데도 결혼한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이 뭔지를 잘 몰랐고 뜨거운 감정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철학을 공부한답시고 늘 냉철한 이성(理性)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라는 나름대로 주관성 때문일 것이다.      

 약간의 고비가 있었지만 우리는 가난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단칸 셋방이지만 둘은 정겹게 살 수 있었고, 이것이 사랑이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 가난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도 받으면서 말이다. 결혼하고 곧 아내는 임신했고 10개월이 지나자 예쁜 공주가 태어났다. 그 해부터 나는 처음 담임을 맡게 되었고 실력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위해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였다. 6시 30분에 출근하여 집에 오는 시간은 일찍 오면 저녁 9시 30분이고 늦으면 10시 30분이다. 이런 생활 10년을 했다. 첫 고3 담임 때는 3일에 한 번씩 12시까지 자율학습 감독하고 학교 양호실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때 일화가 있다. 일요일 아침에 우리 딸이 아장아장 걸을 때 내가 손잡고 골목길을 나왔다. 딸이 이만큼 커 준 것에 대해 자랑스럽고 대견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마침 옆집 아저씨(우리 애를 가끔 데리고 가서 놀아준 아저씨임. 이때까지 이 집에는 애가 없었음)가 "예지야" 하니까 내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옆집 아저씨에게 뛰어가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아이도 이럴 진데 내 옆지기는 무던히도 잘 참아주었구나 하고 아주 고맙게 생각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나던 해에 마산에서 애를 낳으면 내가 학교생활에 지장 있을까 봐서 시어머니가 계시는 (둘째 시숙 집) 포항에서 몸을 풀었다. 아들 머리가 커서 상당한 난산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없이도 애를 낳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낮에 전깃불을 켜야 일을 할 수 있는 뒷간 방에서 밤 11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남편 기다리며 애들 양옆에 누워 있으면 책을 열심히 읽어 주던 나의 아내가 아닌가. 그 덕분에 우리 애 둘(딸 중학생, 아들 초등 5학년)의 독서 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에게 이만큼 빠르게 책 읽는다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이라고 해서 늘 축소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아들은 불평이 심하다.      

 결혼 6년 만에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전세 200만 원에 월 6만 원 주던 셋방에서 25평의 내 집으로 이사했다. 박봉에 이만큼 이룩하려면 얼마나 많은 절제가 필요했을까? 그리고 결혼 13년 만에 마산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지금의 36평 아파트에 이사 오게 되었고 아이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자기 나름대로 똑똑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우리 딸이 성지여중에 다닌다. 아비로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옆지기는 이제 마흔을 바라보며 얼굴에 나름대로 나이 흔적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우리 부부가 고생하면서도 늘 가슴속에 간직하는 것이 자식들은 자기 기상을 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서 잠시도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우리 거실이 참 크다. 보통 집은 거실에 소파와 텔레비전으로 장식하지만, 우리 집은 모든 벽면에 책장과 중앙에는 큰 식탁으로 독서 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러하던 우리 부부가 올해부터는 우리들의 삶을 위해 작은 반란을 시작했다. 두 사람만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곳에 두 사람이 오붓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몸도 찌뿌둥하고 감기 기운이 있어 찜질방에 가보고 싶었다. 나는 두 번 정도 경험했지만, 아직 옆지기는 경험이 없는 것 같았다. 애들 핑계로 안 가려 하는 아내를 우격다짐으로 차를 태워 가면서 나는 내심 우리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은 남녀가 분리된 곳이었다. 할 수 없이 시간 약속 정하고 따로 가서 땀을 빼고 나왔다. 집에 가자고 하는 아내에게 저녁 먹고 들어가자고 하니 아이들 걱정을 한다. 그러나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으니 내가 가는 대로 가야지!!. 간 곳은 시골 밥상 집이다. 깨끗하고 정갈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집이다. 마주 앉아 있으니 아내가 참 예쁘다. 원숙미가 보이고 생활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남편을 편하게 하고 자식들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美다. 예전에는 가끔 술 한잔하면 투정도 하지만 이제는 몸조심부터 먼저 걱정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소유자다. 피부가 뽀송하고 참 밝은 인상이다. 아내가 아니라 오늘은 애인이 하고 싶다. 나의 애인 나의 아내여!!


                                                               2003. 9. 1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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