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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14. 2024

가족의 배려

가족의 배려     

 1980년대만 해도 우리 주위에 자가용을 운행하는 사람은 남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교직원 40명에 자가용이 2대밖에 없었는데 자율학습을 늦게 마치고 차를 갖고 퇴근하는 선생님 차를 얻어 타는 날이면 참 운 좋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차량을 소유한 선생님의 숫자가 급속히 늘면서 1995년도에는 차를 가지지 않는 선생님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그 손가락에 내가 들어 있었다.     

 가난한 결혼에 전세 200만 원에 출발한 우리 부부라 남들이 다 가지는 차를 갖는 그것보다는 우리 보금자리인 아파트를 마련하는 길이 더 시급한 일이라 차를 가지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전 면허증도 1995년 12월에야 받았기에 차는 좀 더 있다가 재산으로 등록해야지 생각하고 우리 부부간에도 그렇게 계획을 잡았다. 


 1996년 4월 1일에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하기 전에 뜻하지 않게 나도 차를 가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누구나 부러워할 이야기인데 우리 둘째 형님이 캐피탈 5년식을 내게 공짜로 주셨다. 포항에서 서울 사무소로 발령 났기에 서울서 차가 필요 없다고 하시며 나에게 하사(下賜)하셨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복이다. 우리 부부가 차를 살 계획은 집에 입주한 이후 3년짜리 저축을 하여서 차를 구매하기로 계획을 잡았는데 말이다.     

 형님이 하사(下賜)한 차로 가족과 유명 산천을 여행을 다니고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 문안을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다닐 수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잘 사용하던 캐피탈을 아내가 운전하다가 브레이크가 파열되어 추돌사고로 4년 만에 폐차했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어찌나 아깝던지.     

 두 달 뒤에 1996년 출시한 중고차 아반떼를 구매했다. 캐피탈보다는 차체는 적지만 나름대로 실속이 있어 지금도 만족하면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반떼는 몇 번 나를 골탕을 먹였다. 첫째는 가족 여행을 가는데 갑자기 시동이 멈추어 점검해 보니 물이 순환되지 않는다고 하여 펌프를 교환했고 한 번은 추석 때 시골에 가는데 배터리 충전되는 것이 고장이 나서 고속도로 중간에 멈추어 생명에 지장이 올 위험을 느끼며 레커차로 집에 오기도 했다.     

 2006년 4월 30일 테니스 대회가 있어 내 테니스 복식 파트너와 차를 타고 대회 장소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가는데 아무래도 평소보다 이상한 징후가 많았지만, 차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고 꼼꼼함이 적어서인지 눈치를 채지 못하고 그냥 갔다. 그런데 고속도로 휴게소 1Km 앞에서 차 계기판이 벌겋게 되면서 차가 멈추어 버린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테니스 대회를 마치고 차를 세워 둔 곳에 와서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레커차를 불러 학교 근처 현대자동차 서비스점에 차를 세워 놓고 집으로 왔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태워 주는 딸이 불편하고 주말농장에 가야 하는데 차가 없으니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단 기동력이 떨어지니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아 보였다. 월요일 아침 딸에게 버스 타고 가라고 했는데 아침에 들고 지고 가는 짐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팠다. 나는 동료 선생에게 부탁하여 카풀로 출근했다.     

 자율학습을 늦게 마치고 퇴근하려니 앞이 막막했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몇 번을 타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생각하지도 않은 선생님이 퇴근하자고 내게 왔다. 오늘 홍 선생님이 차가 없는 것 알고 반에서 학생 지도하면서 기다렸다고 한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편안하게 퇴근했다. 집에 와서 차를 고치는데 170만 원이 든다고 하니 돈보다는 내가 불편한 것이 안쓰럽다고 아내가 걱정한다. 10시에 학원 마치고 온 아들이 아버지 오늘 불편해서 어떻게 다녔는지 묻는다. 11시 30분에 집에 온 딸이 아버지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하면서 인사한다. 나보다는 자기들이 더 불편할 것 같은데…….     

 여하튼 난 행복한 사람이다. 신이 내린 축복이 가족이고 그 축복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나일 것이다. 비록 차는 고장이 나서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혔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족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 더 큰 가치를 얻은 것 같다.

                              2006. 5. 3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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