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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15. 2024

나의 딸 홍예지

나의 딸 홍예지


 1990년 9월 25일 새벽 1시 30분쯤 딸이 태어났다. 24일 밤 10시에 퇴근하니 마산 파티마 병원에 출산하러 시어머니와 같이 갔다고 주인집 아주머니가 알려주기에 병원에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갔더니 산모가 분만실에 들어갔다고 어머니가 귀띔해 주신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분만실 문을 열다가 간호사에게 제지(制止)당하고는 대기실에 어머니 같이 앉아 있는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애 낳으려면 아직 멀었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 집에 가라고 하신다. 애를 6명이나 출산한 베테랑 어머니 말씀이기에 내일 아침 일찍이 왔다가 출근한다고 말씀드리고는 집에 와서 TV를 보다가 선잠이 들었다. 무슨 꿈인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꿈에 시달리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데 하신 말씀이 “딸이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결에 꿈결에 전화를 받고는 그래도 병원에 가야지 하고 옷을 입는데 대문에서 나를 부르고 내려가 보니 어머니가 급하게 오시면서 미역이 있느냐고 물으신다. 미역이 없음을 확인하시고는 뭇국을 끓여서는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같이 갔다. 그때 시간이 새벽 2시 30분쯤으로 기억이 난다. 신생아실 창문에서 우리 딸이 누구냐고 간호사에게 물으니 이 아이라고 가르쳐 주는데 모든 아이가 똑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딸은 나를 조금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딸이 무럭무럭 자라서 5살 때 어린이집에 다녔고 집에 있는 12인치 TV가 고장이 나서 3일간 TV 없이 지낸 적이 있다. 첫날은 저녁 먹고 동화책 보다가 피곤하여 일찍 자고 2일째는 저녁 먹고 할 일이 없어 우리 딸과 선생님 놀이를 하는데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투와 행동과 지시사항을 너무 똑 부러지게 잘하여 장래에 무엇인가 큰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때 피아노를 치겠다고 하도 성화여서 피아노 학원에 보내려고 상담하였더니 손가락이 짧아서 못 하는데 그렇게 하고 싶으니 한번 해 보자고 하여 피아노 학원도 같이 다녔다. 어린이집 다닌 지 1년이 지났을 때 학원에서 재롱 잔치하는데, 기대를 크게 갖고 재롱 잔치에 참관했는데 내가 기대한 만큼은 못 한 것 같아서 기대와 희망이 조금은 하향곡선을 그리기도 하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학예회를 하는데 음악 발표회 시간에 우리 딸이 피아노를 오래 했으니 피아노를 치겠지 했는데 딸이 맞은 임무는 탬버린이었다. 이때부터 나의 소원은 건강하고 인간성 좋은 인간으로 키우는 것이 되었다. 5학년 2학기 끝날 때 ‘논리 정속독(論理 正速讀)’ 자격시험을 치른다기에 창원에 차를 태워 주었는데 약 500명쯤 시험을 치는데 우리 딸이 속한 5급 수준에는 몇 명이 없음을 보고 다시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도 하였다. 


 장래를 보고 큰 목표를 세워 공부시킨다고 아내와 약속했고 또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천하려고 했는데 중학교 입학하니 학교 성적도 신경이 여간 쓰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공부를 아예 못 하면 신경을 좀 덜 쓰련만 자기와 비슷한 수준에서 공부하는 애들은 전교에서 1등이다 2등이다 하면서 못 해도 전교 5등인데 우리 딸은 그것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성적이 있으니. (그런데 내가 선생님 하면서도 좀 아둔하여 교과서를 10번 정도 읽으면 좋은 성적이 나오고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을 듣고 참고서도 하나 사주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세운 프로그램으로 가느냐 아니면 학교 성적으로 가느냐를 놓고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초심으로 밀고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르지만 2004년만큼은 고민을 덜어 주었다.     

 2004년 5월 경남 수학 경시대회 예선을 학교에서 전교 공동 1위, 과학 경시대회 학교 최우수, 교육청 금상, 독서퀴즈 대회 학교에서 우수, 마산 교육청에서는 금상, 그리고 학교 성적도 밤새워 공부하더니 2학기에는 평균 96.4로 전교에서 등수에 들 정도로 기반을 닦아 나갔다. 그리고 12월에는 경남대학교 영재 교육원 수학 분과에 최종 합격도 했다. 한 해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우리 딸을 좋아하는 이유가 제1회 GYST(경남 청소년 과학 토론대회)에 참여하는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5명이 한 팀이 되어서 수학,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정보과학의 문제를 설명하고 다른 팀에서 반론하고 평가하여 좋은 점수를 받은 팀이 토너먼트로 올라가는 대회였다. 경남에서 나름대로 관심이 있는 학교나 학원에서 출전하는데 우리 딸은 엄마의 정보를 받아서 학교 친구 5명으로 팀을 만들어 학교 선생님에게 자문하여 출전하려 했다. 선생님도 팀을 규합 총괄은 하지만 각 분야에 모두 전문가(학원은 선생님이 분야별로 교육함)가 아닌 이상 학생 모두에게 지도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우리 딸이 담당한 과목이 모두가 꺼리는 정보과학이라 자료도 없고 전문가가 없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대학 교수님과 연결해 주는 것인데 선배, 후배 또는 지인(知人)인 정보 통신과 교수님 명함을 몇 장 갖다주고 필요하면 전화하고 메일 보내서 필요한 정보를 구하라고 했다. 그러나 딸은 혼자 힘으로 해결한다고 하면서 꼭 필요하면 자문하겠다고 한다. 대회가 10일 앞으로 다가오자 낮에는 팀 회의한다고 학교 가고 밤에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컴퓨터와 책을 번갈아 가면서 자기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음을 느꼈다. GYST 대회가 2005년 1월 12일 13일은 예선과 준준 결선이고 14일은 오전에 준결승이고 오후에는 4팀이 결승하는데 우리 딸이 속한 Step by Step은 준결승까지는 1위로 가다가 준결승에 아깝게 3위로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내가 맛있는 것 사주며 위로하려 했지만, 준비와 대회 기간 정말 고마운 아버지라고 1등 못해 죄송하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이틀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잠만 자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이 그 정도의 집념이 있으면 앞으로 뭐를 하든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슴이 뿌듯하다. 우리 딸 파이팅!!! 너무 예뻐!!!! 나는 팔불출이다.     

                                           2005. 1. 16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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