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윤헌 Feb 15. 2024

바보 아빠

바보 아빠     

 아침 6시 전후로 잠에서 깨어난다. 아내가 가르쳐 준 아침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습관화가 되지 않아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휴대전화기로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뉴스를 살펴본다. 정확히 6시 30분이면 알림 벨이 울린다. 숨 쉴 틈도 없이 전화기에 2번을 길게 누른다. 벨이 3~5번 정도 울리면 전화기 너머로 잠이 좀 덜 깬 목소리로 “아빠, good morning”한다. 

“우리 딸 숙면했나?” 

“네. 잠 푹 잘 잤어요.” 

“오늘 월요일인데 이번 주에 재택근무는 없나? “ 

”요즘 좀 바빠서 재택근무는 없을 것 같아요. “

”아이쿠 우리 딸 힘들어서 우짜지? “

”괜찮아요. 이제 직장 생활도 적응할 시기 넘었잖아요. “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힘들면 쉬어가면서 해라. 행복 할라꼬 직장 생활하는데 죽을힘 다해서 일하면 안 되잖아 “

”네 아빠. 아빠는 저희보다 힘들어도 늘 웃으면 학교생활하셨는데 딸도 닮아야지요. “

”어이구 착한 우리 딸. 딸이 있어 너무 행복하네. “

”저도 아빠 딸이라 너무 행복해요. “

”오늘 엄마 생일인데 아침에 주무시니 나중에 전화할게요. 씻을게요.”

“그래 오늘도 파이팅 하자. 이쁜 우리 딸!”

“네 아빠. 아빠도 파이팅 하세요”

“응 아빠는 딸하고 아침에 전화하는 것이 제일 행복해. 보고 싶어.”

“저도요. 아빠 사랑해요.”     

 월, 화, 수, 목, 금요일에 통화한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한 후에 매일 모닝콜을 한다. 3년간은 서울 소재 상계동에서 여의도로 출근했기에 6시에 하다가 지금은 가까운 곳에 이사하여 30분 늦게 한다. 직장 생활 4년 동안 지각을 4번 했다고 한다, 한 번은 팀 회식이 있어 1시간 늦게 출근했는데 팀에서 1등 출근을 했고 두 번은 버스가 막혀 10분 정도 지각했고 한 번은 배가 아파 화장실에 좀 오래 있다가 20분 정도 지각했다고 한다. 아주 성실한 직장인임에 틀림이 없다. 아버지는 32년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자기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자기들 등교시키기 위해 30분 일찍 출근하면서도 늘 기분 좋게 출근하시는 아버지로 기억해 주었고 또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해 준 자식이니 얼마나 대견하고 자랑스러운가? 딸과 통화가 끝나면 침대에서 가볍게 스트레칭하고는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다. 밥을 먹지 않고 출근하니 4교시 수업이 힘이 들어 최대한 간단하고, 적게 먹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는 7시 30분이면 전화기에 3번을 길게 눌린다. 아들이다. 작년 8월부터 아들도 출근하기에 아침잠이 유난히 많아 모닝콜을 해 주기로 했다. 대학원 다니면서 늦게까지 논문 쓰고 아침 10시까지 자는 버릇 때문이다. 원룸에서 직장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고, 9시까지 출근이기에 일찍 깨워 줄 필요가 없지만 내가 학교 출근하면 전화하기 힘들어 출근 전에 깨워준다. 전화 신호음이 간다. 빨리 받아야 6~7번 정도 기다려야 전화를 받는다.

“아이고 우리 아들 잘 잤나?”

“네 아버지”

“푹 잤나?”

“네”

“오늘도 파이팅 하자. 우리 아들”

“네 아빠. 아빠도 파이팅 하세요”

“사랑해 아들”

“저도 사랑합니다. 아부지”

아주 짧게 통화를 한다. 딸의 통화 내용과 통화 시간이 많이 차이가 있다. 그래도 딸과 아들에게 빠지지 않는 마지막 말은 “사랑해”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랑은 ‘어떤 대상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꼭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나 동물에게도 해당하지만 우리는 좀 고전적으로 해석하여 사람에게 국한시켜서 애정으로 표현을 많이 한다. 60년을 살아오면서 애틋하게 무엇을 애타게 그리워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인지 몰라도 가족에게는 애틋하게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대한민국 대부분 가장(家長)들의 마음인지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 아버지가 표현이 서툴다고 한다. 마음은 애틋할지 몰라도 쉽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많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누구나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대화의 기술이 모자라 사랑의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랑의 바탕에는 공감과 배려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 가족이 외식하러 간다. 내가 술을 좋아한다. 아내는 소주 한 병만 먹을 것을 강요하고 나는 한 병에 몇 잔이 더 필요한 주량이다. 가령 횟집을 가면 회를 시키고 술과 음료수를 시킨다. 그러면 딸과 아들이 “아빠 나도 한 잔만 주세요” 한다. 다 큰 자식이 대견스러워 한 잔씩 따라 주고 음식이 나오면 한잔하자면 잔을 부딪친다. 이야기가 아주 잘 된다. 서로 경청하고 강요하지 않는 대화이기에 자연스럽다. 자연히 술병의 술도 줄어든다. 한 병 더 시킨다. 아내의 눈이 커진다. 그러면 딸이 “엄마 우리가 한 잔씩 하니 아빠 술이 적잖아요” 한다. 그래서 내 주량만큼 먹고 맛있게 외식한다. 외식을 마치고 나올 때면 딸과 아들 술잔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부모의 다툼을 사전에 차단하는 아주 놀라운 기술이다. 이번 설에는 아들이 엄마에게 세뱃돈 대신 선물을 하려고 한다. 엄마는 나무를 원했다. 나뭇값을 계산하면서 조건이 아버지 한잔하시는데 잔소리하지 않기이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인가? 아내는 남편 건강 생각하고 딸과 아들은 아버지의 기분을 살펴주니 사랑이 없을 까닭이 없다.


 바보는 삶의 만족 기준점이 낮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으면 무조건 좋다. 그래서 싱글벙글 웃는다고 한다. 기준점은 늘 상대적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겪은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본다. 시골에서 보리밥이라도 먹으면 만족하면 살았다. 대부분 가정에서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이 있으니 부자인 줄 알고 살았다. 70년대는 새마을 운동으로 곳간에 벼가 가득 들어있어 늘 넉넉하다고 생각했고 동태로 국을 끓여주면 국물만 주어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70년대 말 고등학교를 대구로 진학하니 빈부의 격차로 우리가 가난함을 직감했고, 80년 대학에 들어가니 돈이 없어 미팅도 제대로 못 하는 나의 처지가 정말 비참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기준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딸과 아들에게 모닝콜을 하는 아빠는 그 시간이 가장 기분이 좋다. 바보이기 때문이다. 딸이나 아들에게 기대하는 기준점이 없다. 그냥 건강하고 자기 주체성 갖고 살아가면 무엇이든 자기의 의견을 존중한다. 내가 요구하는 기준점이 없기에 전화 통화만 해도 기분이 좋다. 바보 아빠는 늘 기분이 좋다. 그러니 하루 직장 생활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잘 웃는다. 학생들이 바보라고 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푸근한 품에 안기고 싶다고 한다. 양쪽 다 바보라도 좋다.     

 오늘도 6시 30분 알림이 울리고 3초 이내로 전화한다. 평소 일어나던 목소리가 아니라 낭랑한 목소리다. 오늘은 3분 일찍 일어나 아빠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딸도 아빠 바보인 것 같다. 그리고 보니 우리 집 식구들이 전부 바보라서 늘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바보 아빠의 유전자가 깊게 스며든 것 같다. 오늘도 하루 건강하고 기분 좋게 시작하자 파이팅!!!     

                                          2022. 3. 15 憲          

작가의 이전글 나의 딸 홍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