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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19. 2024

세뱃돈

세뱃돈     

 지금 80세가 훨씬 넘은 김종필 씨의 증언에 의하면, 김종필 씨도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세뱃돈을 받았다고 한다. 충청도 사람이 양반인데도 세뱃돈을 주었는데 우리 마을은 경상북도의 산골 마을이고 양반이라고 자처한다. 그런데도 세뱃돈은 양반이 받는 것이 아니라 상민들이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상놈이나 하인이 세배하러 오면 양반과 같이 식사할 수가 없으니 엽전을 던져주면서 막걸리나 한 사발 하라고 주는 돈이 세뱃돈인데 양반 아들이 웬 세뱃돈이야 하시면서 지금까지 철저하게 세뱃돈 주는 것을 거부하셨다.     

 이런 영향일까? 우리 집 식구들이 세뱃돈을 주는 것이 정말 짠물이다. 보통 다른 집안에는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두 명 정도 있으면 세뱃돈으로 상당한 액수를 받았다고 자랑하지만, 우리 집 아이나 조카들은 큰아버지와 삼촌 고모가 많아도 겨우 10만 원 범위에서 만족해야 한다. 나 역시 형님들을 배신(?)하고 돈을 줄 수 없어 짠돌이 삼촌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은 새해에는 외갓집 가기를 선호한다. 젊은 외삼촌이라도 기본이 5만 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2011년도 새해에는 나에게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해다. 지금까지 22년간 막내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줄곧 차례상을 준비하던 아내가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올해부터 3년 동안은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83세의 어머니가 이제는 차례상을 차릴 힘도 없지만 그렇다고 3명의 형수가 온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가 지극 정성을 다하면 마음이 보드라운 아내가 반전(反轉)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거가대교를 드라이브도 가고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고 막판에는 자존심을 건드려 보다가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협박도 했지만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2011년 2월 8일 일찍 일어나 아내에게 애처롭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는 실패하고 딸과 아들만 데리고 고향으로 갔다. 시골에 도착하자 어머니의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그것보다는 심각했다. 나는 내가 22살 된 딸과 음식을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머니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어머니의 분노는 엄청나게 강하여 “내야 모르겠다.” 하시고는 방에 누워 버리는 것이다. 딸과 아들이 엄청 난감한 표정에 아버지의 무능이 폐부 깊숙이 스멀스멀 흘러 들어옴을 느꼈다.     

 대충 점심 차려 먹고 차례상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에 대구에 사는 바로 위의 형님과 형수가 왔지만, 형수를 집에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을 맡기기도 어려워 딸과 아들이 협동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아내가 있어 세련된 음식은 아니라도 구색은 맞추었다. 오후 늦어서 장조카도 오고 둘째 형님도 왔지만, 막내 가족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차례상 준비를 마무리하고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방으로 갔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은 요즘 젊은것들은 한 2년 동안 안 보이면 이혼했다고 한다며 우리를 걱정했다. 그러면서 손녀에게 엄마 무슨 일이 있느냐고 계속 물었지만 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함구령을 내렸기에 그냥 미소만 짓고 “아무 일 없고 엄마가 감기 기운이 있어 집에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한다. 내가 주머니에서 은행에서 새로 바꾼 새 지폐를 봉투에 넣어 내일 세뱃돈 하라고 어머니에게 전달하니 어머니는 당신의 서랍에서 돈 봉투를 꺼내어 10만 원짜리 수표를 한 장씩 손녀, 손자에게 주고 내일 아침에는 조금만 줄게! 하신다. 손녀는 대학생이고 손자는 올해 대학에 들어간다고 준비하신 모양이다.     

 설날 아침이다. 세배한다. 덕담이 오가고 지갑에서 세뱃돈을 준다. 나는 우리 아이에게 5만 원씩 준비하였는데 형님들 눈치를 보다가 만 원씩만 주었다. 형님들은 작년과 다르지 않았다. 차례를 지내고 차를 타고 내려오는 차 안에서 우리 아이에게 5만 원 지폐를 한 장씩 주었다. 그러자 우리 아이들이 역대 최고의 세뱃돈을 받았고 함성을 지른다.      

 어릴 때는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거지들이 밥 얻으러 오는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그러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살아온 길과 부모님이 살아오신 길은 절약으로 점철해 있음을 느낀다. 그 절약 정신이 습관이 되어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쓸 수 없음이 우리 집안 형제의 특징으로 간주하자. 일 년에 한 번뿐인 세뱃돈도 습관의 유산이니까?     

                                            2011. 2. 7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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