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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23. 2024

방송용 Ment

방송용 Ment     

 인간에게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것은 말은 적게 하고 남의 말은 많이 경청하라는 하나님의 특명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과학자는 귀가 하나면 균형 감각이 없어 남의 말을 들을 수 없기에 귀가 두 개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인간은 말을 적게 하면 좋다는 것인데 과연 말을 적게 하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우리가 하는 말에는 참말, 거짓말이 있고 거짓말에는 선한 거짓말(white lies)과 악한 거짓말(black lies)로 나눈다. 논리 실증주의에 의하면 개념에는 우선 의미가 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분하는데 과학적으로 검증되면 의미가 있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은 무의미하기에 무의미한 것은 버리고 의미 있는 것은 참과 거짓을 구분하여 거짓은 버리고 참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는 말에 전부 참말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마음에 없는 말이 때로는 윤활유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11월 22일 저녁 7시에 친구하고 소주 한잔하려고 약속을 한 상태에서 퇴근하면서 테니스를 쳤다. 잘 치지는 못하는 테니스지만 구력이 5년 정도 되니 재미있게 치는 정도의 실력이다. 테니스가 운동도 되지만 치는 재미가 있어서 약속도 잊을 때가 많다. 오늘은 두 게임을 열심히 했고 땀을 흘리다 보니 시간이 6시 10분 정도이다. 약속 시각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만큼 시간이 빡빡하다. 테니스 동호인에게 먼저 간다고 이야기하고 과속으로 집으로 갔다. 과속하다 보니 시간이 어중간하여 바로 약속 장소로 가려다가 발이나 씻고 가야지 하면서 집으로 갔다.     

  혼자 집에 있는 아내에게 술을 마시러 간다고 하려니 미안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안 갈 수 없는 처지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낯선 신발이 보였다. 이웃집 아주머니와 차를 마시는 모양이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거실로 가니 이웃집 아주머니가 가려고 일어선다. 나는 얼른 제지하면서 내가 나가야 하니 더 놀다 가라고 했다. 잔소리하고 싶은 아내지만 손님이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발을 씻으면서 “바로 약속 장소로 가고 싶었지만 예쁜 마누라가 보고 싶어서 집에 왔다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니 이웃집 아주머니가 몹시 부럽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그런 말 꼭 듣고 싶은데 우리 신랑은 한 번도 해 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생각해도 시기적절하게 방송용 멘트를 날린 것 같다.


 반면 방송용 멘트가 잘 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배려한 말이 상대가 오만 질 수 있기도 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어 무능한 사람인데 실제로 잘못한 일을 힘 실어 준다고 칭찬하니 10년 동안 자랑하고 다니는데 똑바로 지적하기 힘들어 가슴앓이한 적이 있다. 조심해야겠다. 하나 더 이야기하면 부부 동반으로 외식하였는데 시중드는 아줌마에게 “참 이쁘기도 하고 서빙도 잘한다”라고 칭찬했다가 아내가 화날 때마다 아무 곳이나 침 흘리고 다니는 사냥개 같다는 핀잔을 듣는다. 아이고 힘들어.

                                          2006. 11. 23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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