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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23. 2024

어버이날

어버이날     

 2005년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영욕(榮辱)의 세월을 한(恨) 많게 살아왔음에도 뭐 하나 보상받지 못한 세대가 우리 부모님 세대 같아 더욱더 가슴이 저미어온다.     

 1926년 밭 두 때기와 천수답 150평과 초가집이 전 재산인 가정에 맏아들로 태어나신 아버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부를 해야 자기 직분에서 직위가 상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그런 형편에 태어나신 우리 아버지는 공부에 엄두도 못 낸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 할아버지도 태어나신 지 3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어 동냥젖으로 생명을 유지하신 분이지만 해방 후에 마을 동장 일을 맡을 실 정도의 한문 실력을 갖춘 분이라 자식도 그냥 독학하면 되겠지 생각하셨는지 자식의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10남매의 맏이지만 현재는 남동생 1명만 있습니다.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에 겪은 일이지만 얼마나 가슴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 드라마로 나오던 ‘전원일기’를 열심히 보시던 아버지입니다. 그냥 농촌 드라마고 무난한 드라마이기에 보신 줄 알았는데 극 중에 김혜자 씨가 할머니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며 눈가에 이슬이 보이시던 아버지입니다.


 19살에 장가들어 아들 한 명 낳고 1․4 후퇴 때 군대 징집 가서 전투 경험까지 하신 분이다. 그럴 때 잘못되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니 하나님께 감사드린답니다. 아버지는 정말 성실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출발이면서도 집을 7채나 건축하시고 논, 밭을 많이 매입하여 재산을 확보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는 학전댁(우리 할아버지 택호) 아들 논 사는 것만큼 쉬운 게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아버지 장가보낼 때는 3칸짜리 집 1채와 상답(上畓) 600평, 밭 800평, 새끼 밴 암소 한 마리, 농기구 일체를 챙기어 장가보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평가하면 아파트 33평에 자동차에 가게까지 얻어서 물품을 채워 준 것이나 다름없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나는 복이 많으니 박복한 너희 작은 아버지 소홀함 없이 모시라”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렇게 많이 모으신 재산도 산업화와 자식 교육에는 큰 힘이 못 된 것 같습니다. 내가 대학 다니던 80년도에는 내가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대학 다니기 어려워 국립대학 입학과 장학금 받으려고 남들이 대학 생활 즐길 때 공부하고 당구를 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니 씁쓰레한 웃음이 납니다.      

 아버지는 비가 오면 농민 대부분이 주막에서 막걸리 마시며 참살이(Well-being) 생활(?)을 즐겼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양발 꿰매는 옆에서 달력 뒷면에 「三千字」한문 책을 빽빽하게 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자식들이 그래도 공부를 좀 할 수 있었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시골집에 가면 찢어진 달력 뒷면에 아버지 글씨가 보인답니다. 대학교수 정년으로 퇴임하신 분도 팔순까지 공부하신 분이 몇이나 될꼬??? 집안에서 상(上) 노인이 되신 우리 아버지는 요즘 죽는 연습을 하십니다. 소설책 “아버지”에서 암으로 고생하시며 자식에게 고생 안 시키고 죽으려고 연구하는 분처럼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철칙이 첫째는 너희 엄마보다 먼저 죽는 것, 둘째는 병원 가지 않고 죽는 것, 셋째는 너무 오래 살아서 자식 먼저 보내는 것 없이 죽는 것이다. 자식들이 건장하여 어느 하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일인데.     

 아버지는 절제(節制)의 대왕이시다. 욕심도 없다. 선물하시면 관이 무거워 안 되고 요즘 옷 태울 때도 없다고 하시며 선물 사절하신다. 아내가 용돈 드릴 때는 꼭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나누어 드리지만, 아버지가 돈을 받아서 있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되고 바로 어머니에게 주십니다. 그래도 요즘 아버지 뒷주머니에 2만 원은 꼭 가지고 계십니다. 왜냐고 물으면, 당신의 막내 손녀와 손자인 우리 딸과 아들에게 용돈 주어서 “할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소식(小食)을 하십니다. 하루 일정한 양 이상은 절대 안 잡수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에게 “아부지요 스님보다 더 도력(道力)이 높심더”하면 염화시중의 미소를 흘리십니다.     

 어머니 생각하면 이 말이 생각납니다. “어여쁜 여자를 만나면 3년이 행복하고 능력 있는 여자를 만나면 30년이 평화롭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삼대(三代)가 형통(亨通)한다.” 우리 어머니는 3가지를 다 갖추었지만,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지혜 있는 여자입니다.

아버지보다 3살 어리지만, 일본 강점기에 공출(供出)로 잡혀가지 않으려고 소학교 4학년 마치자마자 바로 아버지와 혼인하신 나이가 16살입니다. 외할아버지가 면사무소에 볼일 보러 가셨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 심부름 갔다가 외할아버지 눈에 띄어 외할아버지가 왕고모(할아버지 누님)에게 중매를 부탁하여 두 분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19살에 첫 출산 하시고 막내인 나까지 6남매를 낳으니 다복하다고 할 수 있죠. 어머니의 성격은 활달하시면서 강단(剛斷)하시어 집안 대소사에 늘 지도자를 하시며 새마을 어머니 회장직을 18년이나 하신 분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버금가는 인물이십니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고추가 시퍼렇게 자라면 한 소쿠리 따와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추 부침개를 부치고 나에게 심부름시킵니다. 할아버지 친구분들 집으로 놀러 오시라 해라고, 나는 7명이나 되시는 할아버지 친구분에게 우리 집에 놀러 오시라고 전하고는 막걸리 2되를 받아 사랑방에 넣어 주면 사랑방에서 환희의 소리가 들리곤 했답니다. 이 시기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0년을 홀로 사신 할아버지가 60대 중반일 때입니다. 우리 어머니 덕분에 내가 인간관계가 아주 원만한 것 같아서 늘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 큰 형님이 장가갈 때 우리 형수님 집에서 형수 오빠 되는 분이 우리 마을을 방문하여 우리 집을 보니 겨울인데 방마다 신발이 가득하더라고 인심은 좋은 집인 것 같다고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어머니의 한 가지 모습만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어릴 적에 먹는 것이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집에 잔치해야 고기 맛을 볼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요. 내가 7살 정도 되었을 때 우리 아래 집에서 잔치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진두지휘하시면서 잡채 담당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잡채를 먹는다는 것은 지금 일류 요리 먹는 그것 더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 엄마들은 자기 아들을 몰래 불러 잡채를 그릇에 담아 뒤꼍으로 불러 퍼 덕 먹이고는 다른 곳에 가서 일하였습니다. 어린 마음이 나도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다른 아이보다 많이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어머니가 잡채를 덖고 계실 때 가서 “엄마 나도 잡채 좀 도고” 했더니 엄마가 손으로 등을 치며 저리 가지 않나 하시며 성을 내신 것입니다. 나는 너무 서러워 울면서 집으로 와 정말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에 어머니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윗목에 잡채가 한 그릇 있었답니다. 손님 치르는 일을 끝내고 잡채가 남으니 자식에게 갖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이게 얼마나 나에게 큰 교훈인지 모릅니다. 공적인 일은 공적으로 하고 사적은 다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왜 어머니가 18년 어머니 회장직과 집안의 리더인가를 일깨워 주셨답니다.     

 이제 77살의 어머니는 많이 늙으신 것 같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된장 한 냄비 끓여 놓으시면 자식들이 맛있다고 경쟁이라도 하듯 밥 두 공기를 가볍게 해서 치우는데 얼마 전에는 된장이 조금 짜다고 생각하니 어머니가 너무 늙으신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먼저 전화를 드리면서 “엄마 칼국수 먹고 싶어요.” 하면 어김없이 경북 북부의 구수한 콩국수를 만들어 주십니다.     

정말 고마운 부모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자식을 부모님 덕분에 너무 행복하답니다.

                                         2005. 5. 8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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