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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28. 2024

옛 추억의 산길

옛 추억의 산길      

 1965년 3월에 중학교에 입학한 작은 형님이 통학하기에는 너무 멀어 3년 동안 자취해야 했다. 매주 오기 힘들고 2주일마다 토요일에 집에 와서 월요일 새벽에 2주일간 먹을 양식과 반찬을 들고 할아버지와 동행하여 큰 산을 넘어 자취방에 오가던 길을 50년째인 올해 한번 가고 싶다고 피력(披瀝)하셔서 형제들이 날 잡아 등산 겸 옛 추억을 되돌아보자고 여름에 합의했다.     

 부모님이 다 세상을 하직(下直)하시고는 형제간의 모임도 쉽지 않다. 설, 추석, 제사에 잠깐 모여서 담소하며 술 한잔하기 어렵다. 밤이 늦어 집에 가기 바쁜 것이 현실이다. 우리 형제들도 어머니 돌아가시고 2년 가까이 좀 소원하게 지낸 적도 있다. 그래도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셨고 당신 몸소 형제 우애를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신 분의 덕택인지 자식들도 곧 오해를 풀고 우애를 키워나갔다.     

 설, 추석이나 제사 말고도 1년에 두 번 모여서 식사하고 여흥도 즐기기로 합의하고 5월과 11월에 서로 약속 없는 날을 잡아서 모이기로 했다. 우리 형제들은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버지는 술을 한 잔도 싫어하신 분이고 이유 없이 술 마시고 만취한 사람을 짐승 취급하신 분이시고, 어머니는 일하실 때 한 잔씩 하시는 분이다. 어머니도 할아버지 때문에 밀주(密酒)를 담아서 술을 거를 때 농도를 맛보다가 술을 잡숫게 되었다고 한다. 술을 즐기시기는 하지만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식들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작은 형님은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본인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학자이기에 늘 맑은 정신이 필요하기도 하고 절제가 아주 잘 된 분이라 그럴 것 같다. 큰 형님은 술이 과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몸도 안 좋아 그렇게 취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큰누나도 술을 좋아했는데 회갑 지나자 술 양이 적어졌다. 그래도 술좌석에서 분위기 몰이꾼은 아주 많이 잘한다. 자형도 술을 아주 좋아하신다. 나와 바로 위에 형님도 술을 아직은 많이 마시는 편이다. 그래서 나, 누나와 바로 위에 형님과 자형이 모이면 꽤 많은 술병이 빈 병으로 치워지고 일화도 종종 만들어 낸다.     

 2015년 7월 20일경 부모 유산 문제로 대구에서 4형제가 모여 상속을 정리하며 식사와 반주로 간단히 하고 찻집에서 빙수 한 그릇 먹으면서 시골 고향 이야기하다가 작은 형님이 중학생 시절 다니던 옛길을 걷고 싶다고 피력하셨기에 모두 좋다고 합의했다. 난 곧 잊어버리고 큰누나에게 10월에 가까운 마산 적석산을 등반하고 소주 한잔하자고 제의했더니 누나가 그 길을 이야기하여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기에 내가 다시 그 시간을 떠 올릴 수 있었다. 추석에 작은 형님에게 10월 4일 옛길을 가자고 제의했고 형님이 워낙 바쁜 분이라 집에 가서 일정을 확인 후에 연락한다고 했다. 그래서 잡은 날짜가 10월 4일이다.     

 10월 4일 날씨가 무척 좋다. 작은 형님은 바로 산 밑으로 10시 30분에 오시게 하고 나머지는 대구에서 함께 출발하여 10시 30분에 같이 만나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대충 준비하여 대구 가는 버스를 탔는데 창녕에 가니 황금 들녘이란 말을 만든 사람에게 감탄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대구에서 자형, 누나, 형님과 함께 차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가던 도중에 슈퍼에 들러 소주와 막걸리 준비하여 약속 장소에 가니 작은 형님도 금방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 시간이 10시 15분이다. 간단하게 인사하고 등산 가방 내용물을 조율하고, 등산복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산으로 출발하였다.     

 정확히 50년 전의 길이라 기억이 별로 없다고 하신다. 대다수 형제는 초행길이라 어디서 출발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한참을 논의하다가 옛길이 보이는 곳이 있어 그 길을 따라 무작정 갔다. 희미한 옛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고향길이 옛날 나무하던 경험이 있어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기에 그냥 간 것이다. 10분도 채 못가 길이 없다. 의견이 분분했지만, 산 능선을 향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능선까지 거리는 200m 남짓 하지만 잎이 떨어져 흙이 푹신하여 발목이 비뚤어지고, 미끄러워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심마니 산삼 캐는 모양새다. 앞서가던 누나가 내가 가장 힘든 사람 같다며 걱정한다. 기실 내가 발목이 좋지 않아 통증을 참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능선을 올라 평탄 길을 조금 걷다가 시계를 보니 12시다. 갑자기 배가 고파서 밥 먹고 가자고 하니 전부 동생 말에 동의한다. 역시 형제가 좋다. 누나가 한 가방 가득 싸 온 먹을 것을 내놓았다. 돼지고기 삶은 것 한 도시락, 밥 도시락 3개, 배추김치, 파김치가 있고 철수 형님 아는 여자 친구는 떡, 밤, 땅콩 삶은 것, 그리고 자형 가방에서 사돈이 준다고 가지고 온 포도주 한 병, 단술 큰 병 하나, 작은 형님은 오이 한 도시락, 철수 형님은 막걸리 두 병에 소주 중간형 3병, 나는 입만 가지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 힘든 모양이다. 소주가 달다고 이야기하고, 밥이 많다고 한다면서 끝에는 모두 먹어 치우면서 말이다. 밥 잘 먹고, 과일로 후식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50년 전 아침에 할아버지와 이별의 장소인 묘지(지금은 폐 묘가 되어 나무가 무성함)는 작은 형님의 기억에 새록새록한 것 같았다. 저쪽 산모퉁이를 돌면 자취방이라고 기억나신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여기서 쌀 포대를 주며 가라고 하시고는 담배를 피우며 나를 지켜보신 장소이다” 한참을 서서 그곳을 응시하는 작은 형님의 눈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감회가 새로운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뒤돌아 오는 길은 아주 쉽다는 자세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을 의논도 없이 앞장선 사람은 옛날 나무하러 다니던 길을 따라간다. 한참을 걸어도 출발점이 안 보인다. 거리상으로는 다 와야 하는 거리인데 말이다. 아무도 잘못된 길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이제 자신만만인 인 것 같았다. 여유가 있어 도토리를 줍기도 했다. 우리 집사람이 좋아하겠다며 형제들이 합심한 것이다. 도토리가 얼마나 많은지 두 곳에서 10분씩 주웠는데 등산 가방이 가득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며 걸어서 하산하여 큰길에 나와 보니 우리가 아침에 출발한 곳에서 약 2km나 떨어진 곳이다. 그래도 원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분명한 것은 힘이 들었는데 지친 기색은 없다. 앞으로 일 년에 두 번은 등산하기로 합의했다. 집에 오니 저녁 7시가 좀 넘었다. 약 12시간 만에 집에 온 것이다. 깨끗이 씻고 아내에게 일과를 보고하고는 11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기분이 왜 이리 좋지??     

            2015. 10. 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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