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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Feb 21. 2024

둥지 떠나는 새

둥지 떠나는 새     

 짐승이든 사람이든 움직이는 동물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가장 긴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자는 인간이 태어나서 3년이면 부모 품을 벗어나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가 죽으면 3년 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부모 품을 벗어나서 독립하는데 요즘은 최소 25년 걸려야 할 것 같다. 어쩌면 평생을 부모에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직장 구하면 결혼하는데 부모에게 의지하고 애를 낳으면 부모에게 봐 달라고 하니 부모가 죽지 않으면 의지 대상인지도 모른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짐승은 시간이 좀 지나면 과감하게 새끼를 버린다. 그러나 인간은 정이 많은지 쉽게 새끼들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곱게 키운 딸이 서울 소재의 대학에 합격했다. 아버지의 처지에서는 집 가까이 지방 국립대에 다니며 장학금도 좀 받기를 희망했지만, 딸의 고집은 이기지 못하였다. 수능시험 후에 바쁘게 놀고 과외를 하면서 잡비도 벌고 친구도 만나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장을 하여 반창회도 주선하면서 잠시도 집에 있지 않던 딸이라 때에 따라서는 심하게 꾸지람도 하고 싶었지만, 너무 예쁜 딸이라 그냥 미소만 보냈을 뿐이다. 그렇게 귀한 딸을 멀리 보내기 싫은 아버지의 심정을 딸은 매정하게 뿌리쳤다. 다행히 기숙사에 입사할 수 있어서 다른 번거로움을 별로 없었다.     

 2월 22일 O, T를 가야 한다고 21일 일요일 날 서울에 가려고 한다. 그래서 서울 외삼촌 댁에서 하루 묵고 다음 말 O, T를 간다고 했다. 그래서 20일 저녁에는 가족끼리 외식했다. 내일 찾아올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라이브하면서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아들은 번거롭게 외식하여 가정 경제를 파탄시킨다고 투덜댄다. 서울 가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 보니 자연히 돈을 쓰일 수밖에 없는데 아들은 단순하게 하면 되는데 복잡하게 돈을 많이 쓴다며 불평한다. 저녁 후에 집에 오는데 안경을 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대학 구내 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추면, 20% 정도 싼 가격의 안경이 있으니 대학 가서 하라고 했지만, 딸은 O, T가가 전에 해야 체면이 선다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안경까지 하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는 내일 필요한 물건과 택배 부칠 물건을 구분한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딸은 21일 아침 일찍 목욕하고 왔다. 그리고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집을 나서며 아들보고 누나 서울 가는데 섭섭하지 않으냐고 하니 뭐 서울 가는데 섭섭할 것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누나야 잘 갔다 와라.”라며 깔끔(cool)하게 인사를 한다. 아내는 딸 잡비를 주기 위해 현금 지급기로 갔고 그사이 나는 5만 원을 딸에게 주면서 맛있는 것 있거든 사 먹으라고 했다. 함박웃음으로 화답하는데 너무 예쁜 딸이라 잠시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터미널에서 차표를 구매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는 모습을 보고는 집사람과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집사람 하는 말이 “좀 서운하다”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엉엉 울고 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영재 교육원 캠프를 2주일씩 다녀올 때도 있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리 눈이 촉촉이 물기가 묻어나는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아내가 빈정거린다. 나중에 유학도 보낼 건데 서울 가는데 왜 우느냐고.     

 집에 와서는 한참 후에 시간을 본다. 이 시간이면 중부 내륙고속도로 상주쯤 지나가겠다 싶다. TV를 아무 의미 없이 이리저리 돌리다가 딸이 생각나니 또 울음이 나온다. 옆에 있는 아내가 자꾸 말을 시킨다. 눈물을 감추려고 이야기하기 싫은데 눈치 없이 자꾸 이야기시킨다. 가만히 생각하니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렇게 슬프다고 울어, 본적이 별로 없었던 기억을 한다. 아버지 무덤을 만들어 상주들이 무덤을 한 바퀴 돌아보고 산에서 내려올 때는 감당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막내는 막내다”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저녁 10시쯤 딸이 전화가 왔다. 서울 잘 도착하여 외삼촌과 저녁 먹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3일 동안 전화가 없다. O, T 때문에 전화를 못 하는지 아니면 집 떠난 자유로움에 기분이 좋아서 집 생각이 나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전화를 걸어도 안 받는다. 오늘 아침에는 기숙사에 필요한 택배를 부쳤다. 둥지를 떠난 딸아 부디 행복해라.      

                                         2010. 2. 25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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