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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윤헌 Mar 05. 2024

눈물의 라면

눈물의 라면     

 아침에 일어나면 보이는 것은 높은 하늘과 사방이 병풍처럼 늘어져 있는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형성된 산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거리가 편도 9km)를 졸업하고 연합고사라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여 대구의 대건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하기 전에 반 편성 고사를 치르고 입학식에 갔더니 1학년 3반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시골에서 열(10) 손가락 안에 들었던 성적이라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반에서 5반까지는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이고 6반에서 10반까지는 우수 반이란 사실을 안 것은 월말고사를 치르고 난 뒤였다. 월말고사에 국, 영, 수를 시험 쳤는데 나의 성적이 600명 중에 400 하고도 반을 넘은 숫자에 내가 이리 못난 사람인가 하고 황당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래는 안 된다고, 절대로 농사일하러 시골에 갈 수 없다고 마음먹고 공부한 결과 여름 방학이 지나고 치른 월말고사에서 100등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에 인상이 정직하게 보이며 늘 웃음 띤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던 반 친구가 자기 교회에서 공부하자고 제의해 왔다. 이 친구는 지금 유명한 대리석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사실은 신문 지면을 통해 알았다.     

 또한,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키가 156cm로 작은 집단이었다. 이런 키가 고등 재학시절에 무려 27cm나 자랐다. 1학년에서 2학년 진급할 때 14cm, 2학년 지나 3학년 중반까지 13cm나 컸기에 1학년 입학할 당시 맞춘 교복이 3학년 때는 밑단을 다 내려도 복숭아씨 위에 오는 바지가 되었다. 그런 관계로 하루에 먹는 식사량이 많아야 하지만 많이 먹지 못했기에 늘 배고픈 것을 감내하며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의 권유를 나는 흔쾌히 거리낌 없이 승낙했고 이후부터 교회에서 공부했다. 그 당시에는 정규 수업 마치는 3시 30분이면 모두 하교했고, 또 통행금지가 있어서 시내버스 타야만 하는 밤 10시쯤 되면 집으로 가야만 했다. 이제 겨우 공부에 맛을 들인 시기에 10시라는 시간은 늘 부족했고 조금만 더 하면 성적이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에 교회에서 새벽까지 공부하고 새우잠 자고 새벽과 집에 가서 도시락 받아서 학교에 가고 모자라는 잠은 점심시간이나 자습 시간을 이용하리라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공부하니 좋기는 좋은데 밤 10시 좀 넘으면 배가 고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간식 가게가 있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인데 그 당시는 김밥 가게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무엇을 좀 먹을 수 없을까? 눈치 보다가 그 교회에 다니는 학생이 석유풍로에 주전자를 얹어 놓고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아닌가? 냄새가 너무 구수하고 너무 좋아 보였으며 모든 일이 해결된 기분이고 성적이 평균 10점은 올라가는 것이 눈앞에 동영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1977년 가을 즉 10월 말쯤이라 생각이 든다. 그 날밤 10시 30분쯤 눈치를 보면서 석유풍로에 불을 붙이고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데 그을음이 주전자를 좀 검게 만들어도 라면 넣고 수프를 넣으니 구수한 냄새에 짧으나마 엄청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교회 권사라는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엄청난 거지 취급과 막말로 욕을 하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교회 사람은 사랑이 많은 줄 알았는데 너무 심하게 꾸지람하시네. 생각하면서 라면을 포기하고 옥상으로 올라가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야만 했다. 객지가 아니고 어머니와 같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공부하는 나를 보면 더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워 주었을 것을.     

 이제는 중년의 남자로 단란한 가정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만약 그때 그 교회 권사님이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나를 대했으면 지금 나는 신앙이 깊은 기독교 신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가족과 외식을 나간다. 가기 전에 무엇을 먹을꼬? 하면 아내는 쌈밥, 딸은 냉면, 아들은 스테이크를 원한다. 모두 제각각이다. 나는 1,500원 하는 라면 한 그릇 했으면 좋겠는데. 그 구수한 수프 냄새. 

                                     2005. 8. 23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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