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했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었다.
나는 고3 마지막 성적이 뒤에서 2등이었다. 편입학을 통해 서울로 대학을 옮겼고, 거기서 또 교환학생을 갔다. 교환학생 동기들 중에는 학교에 대한 불만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1등급이 될뻔한 2등급, 마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같이, 불평하는 그들의 마음상태가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난 편입학을 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공부 못했던 내 과거가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시절 제일 무서운 건 누가 전적대학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친한 친구에도 난 편입했다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 전부가 나였다.
인터넷 어느 투자 커뮤니티에 처음으로 자존감에 관한 글을 썼던 때였다. 자발적으로 편입학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까발렸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편입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노력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내가 수용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완성시키고도 하루를 꼬박 올릴지 말지 고민했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글을 올려버리고 하루가 지났다. 반응은 놀라웠다. 수십 개 댓글이 달렸다. 많은 분들이 위로를 받았다며 고마워하셨다.
'엇 이게 뭐지? 몇 년을 끙끙거리고 말 못 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내 열등감을 밝히고, 오히려 칭찬을 받았다. 위로하려고 꺼낸 얘기였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다. 그 후로 나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졌다. 더 강해진 거 같다.
사람들은 나한테 별 관심이 없다.
대신, 나한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핍을 본다.
학벌이 자신이 없는 사람은 학벌을 본다. 그래서 어떻게 공부를 잘했는지가 궁금하다. 외모가 불만이 많은 사람은 외모를 본다. 그래서 예쁜 비결을 알려주면 좋아한다. 투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투자하는 분들의 수익률이 궁금하다.
중요한 건 진작 다른 사람들은 진짜 나에 대해서 별반 관심 없다는 사실이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잘났고, 못났고, 좋은 경험, 나쁜 경험을 한 그 모두가 나다.
쿵후판다 3에 내 심장을 멈추었던 대사가 있다.
쿵푸팬더의 강함을 눈치 챈 악당 카이가 묻는다.
"너 누구냐?"
거위아빠에게 입양된 쿵푸팬더는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지만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나한테 같은 질문을 해왔지."
"나는 판다의 아들일까? 거위의 아들일까?"
"제자일까? 스승일까?"
"결국 나는 그 모두였어. (It turns out… I’m all of them.)
"나는 드래곤 전사다."(I am the Dragon Warrior.)
열등감, 자부심, 상처와 고통, 그 모든 게 나다.
영화 속 쿵푸팬더처럼, 내가 나의 모두를 '수용'할 때, 강해 질 수 있다. 편입학을 굳이 밝히고, 자유함을 느낀 나처럼,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 보이면 어떨까? 사람들이 흉볼 것 같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열등감이 영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공부를 못했다고, 못생겼다고, 가난하다고 내 가치가 낮은 것이 절대 아니다. 내가 나를 부인할 때, 나의 가치가 낮아진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면 나는 강해질 것이다.
나의 자존감이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 아빠는 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