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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Oct 07. 2024

작년 9월의 이야기

재미없을 법한 이야기를 매일 엮는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으려나?

어린 시절부터 관계에 대한 무서움을 가졌던 이유는 바로 내가 제대로 '책임 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책임 질 수 없는 존재를 만드는 것부터가 비극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항상 내 평생을 맴돌았다.


근데 책임 진다는 게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사랑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사랑은 책임인가.





약 5년 전, 제주도에 내려가 살기 시작했던 어머니는 용케도 제주도에서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중 어떤 분은 어머니와 거의 평생을 함께한 것만 같은 막역한 사이가 되었는데, 그 집에서 기르는 나이 든 닥스훈트 한 마리를 매번 우리 어머니한테 맡기곤 했다. 이름은 깜지.


어머니는 내가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인간들이 먹으려고 구운 막창을, 강아지 깜지에게 하나 줘놓고 깜지가 계속 먹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짖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깜지 이놈! 한 번 줬으면 됐지!"

개는 사람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어머니는 마치 나랑 아버지 그리고 부모님 집 뒷편에 살고 있는 제주도 한달살이의 임시 이웃들을 들으라는 것처럼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내륙 깊숙이 분지처럼 위치한 집터라서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쩌렁쩌렁 주변까지 울린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랑곳않고 깜지에게 소리를 질렀다. 


생각해보면 나한테는 한 번도 그렇게 소리친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죄책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이모랑 이모부한테 맡겨졌고 별다른 설명없이 서울로 납치되어 살았으니까. 언젠가 술을 드시고 그게 미안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나는 적어도 이 여자한테는 오냐오냐-자랐던 것 같다. 디자이너 출신인 이 사람은 매번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날만한 표정과 말투로.. 상대방을 깔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는데. 나도 그걸 느끼기도 했고. 하지만 어머니의 후배 디자이너들한테 소리치고 깜지한테 소리치듯이 나한테 소리친 적은 없었다. 나는 유년기에 죄책감 덕을 조금 본 아이.





이날은 아버지 생신이었다. 옆집에서 생신이라고 샴페인을 주었단다. 생신은 아버진데 나는 가족들한테 고작 밥 한끼 사주고 으스댄 다음, 아버지는 나를 위해 밥을 또 해줬지. 나의 어린 시절, 훈육을 빌미로 나를 몇 대 때렸던 그가 이제는 처량하다. 몇 달 전에는 양계장에서 일하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응급실에 갔다왔다는데 나는 그 소식을 알지 못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하니 내가 바쁠까봐서 그랬단다. 그러다 죽었으면 어쩌게-라고 물었더니 안 죽을 거 아니까 말 안했지-라고 했다. 나도 내 친구들 중 몇몇이 죽을 지 몰랐어. 말 안 하니까 그렇게 죽은거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들 그렇게 천수 누리다가 죽는 거 아니야. 아버지. 아버지 당신은 천수를 누린 것 같아? 새빨간 얼굴로 아버지는 별 말 없이 막창이나 구워댔다. 깜지가 헥헥거렸다.





풀벌레가 귀를 찢어버릴 것처럼 크게 소리를 낸다. 담배 한 대 피우러 가면 쏟아질 것 같은 별빛 아래, 나만 잠에서 깬 것 같아서 무서워진다. 여기는 저녁 7시부터 그런 느낌이 든다. 편의점에 가려면 10분 정도 차를 몰아야한다. 술을 먹고 잠에 든 부모를 뒤로하고 나는 차를 타고 편의점까지 몰았다. 편의점에 남자 셋이 있었는데, 편의점 행사상품을 사는 데 애를 먹어서 나를 뒤에 두고 10분 정도 점장과 실랑이를 벌였다. 나는 짜증내지 않았지만 중년의 남자 둘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괜찮다고 별거 아니라고 조금은 과장되게 웃었다. 나는 담배를 사고 싶었다. 담배를 사고 나와서 야외에 구비되어 있는 나무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중년의 남성 둘도 그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젊어보였던 한 남자는 술을 대여섯병을 사고 어디론가 어둠 속으로 떠나버렸다. 중년 남성 중 더 나이가 든 사람은 월급을 받지 못한 채로 며칠 간 방치되었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좀 더 어려보이는 사람은 '형님-, 형님-'하며 담배를 뻑뻑 태워가며 위로 섞인 말을 건넸다. 씹새끼-, 개새끼-라는 욕이 오가다 건너편에 앉은 나를 보고 다시 나이 많은 남자는 나에게 '미안합니다. 너무 시끄럽죠.'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나는 대답했다. 얼굴이 벌개진 그 아저씨의 얼굴에서 새빨개진 눈을 봤다.





돌아오는 길에 아무 노래나 틀었다. 틀었더니 마이클 부블레의 '렛 잇 스노우'가 나왔다. 그러고보니 겨울의 제주도에 온 적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제주도에 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럼 내가 가이드해줄테니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겨울에 오고 싶다고 했다. 겨울까지 깜지는 자주 우리 집에 오게 될까. 고작 8살밖에 되지 않은 이 강아지를 아버지는 할매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깜지에게 나를 가리키며, '오빠한테 가!'라고 했다. 나는 깜지를 동생으로도, 할매로도 보지 못하겠다. 깜지는 그냥 나를 보면 꼬리를 홰홰치는 귀여운 핫도그 녀석이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녀석에게 사랑을 줘놓고서는 이쯤되면 만족하고 저리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나는 너를 제멋대로 대할 수가 없다.


강아지를 볼 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아프다. 내 마음의 곁에서 우는 사람들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을 한 네가 너무 안쓰럽다. 겨울에 나의 친구가 놀러 오면 깜지도 없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임금을 체불당한 중년의 아저씨들도 없었으면 좋겠다.

클리셰 같지만 눈으로 깨끗하게 덮힌 길을 천천히 그와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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