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과 기만간파를 중심으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사람에 대해 꼴보기 싫음의 심리가 작동한다고 저번에 이야기했었다. 허나, 이에 대해 추가할 설명이 있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됨과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인식 작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만간파'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 그가 하찮게 보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를 '기만'히려는 것에 대해 간파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만간파가 이루어졌을 때, 그가 하찮고 꼴보기 싫어진다. 예를 들어, 여자는 누가봐도 찐따인 남자가 섹시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척을 하는 남자를 질색한다.
유전적으로 그는 절대 섹시하지 않지만(여기서 섹시하지 않다는 것은 유전적인 매력, 묘사하자면 sexual market에서 가치가 없다는 것), 그는 섹시한 척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이것을 간파했을 때 '혐오감'을 느껴야지 더 나은 우월한 유전자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진화 과정은 항상 기만과 기만간파가 공진화를 해왔다. 왜냐하면, 실제로 유전적으로 우월해지는 것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해보이는 '기만'을 하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월한 유전자를 공유하고자 하는 생물체는 '기만간파'를 했어야 했기 때문에, 속이는 사람도 속이는 기술이 진화하고 그 속임수를 간파하는 생물체도 간파하는 능력이 같이 진화를 해온 것이다.
위와 같은 예시처럼 잘난 척하는 사람이 꼴보기 싫은 이유는 "나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 '진짜 잘나지 않았는데 척하네!'의 심리로 기만간파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기만간파가 이루어졌을 때 속 빈 강정이라고 생각하고 허허 웃어넘길 것이다.
서민들은 기만 간파를 했을 때 끌어내려야 자신이 관심을 받게 되고, 동등한 위치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기 에, 기만 간파를 했을 때 항상 욕바가지를 씌운다.
우리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보여지는 것밖에 집착하지 못한다.
아무튼 눈엣가시의 원인은 자신의 모습 투영 및 기만간파도 있다는 것.
기만간파로 인해 만약 그게 꼴보기 싫다면
내가 어떤 정체성 갖고 있어서 그게 기분이 나빴는지 생각해보자.
영어를 잘 쓰는 척, 부자인 척을 하는 사람이 꼴보기 싫은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영어를 못하고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에 능숙하고 부자인 가치가 나에게 없을 때 기만 간파를 했다면
당연히 끌어내려야지. 그래야 내가 위로 올라갔다는 생각이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