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가 독일과 히틀러의 정신에 신화를 제공하다
자주 한 민족의 신화들은 해당 민족의 영혼과 문화에 관해 가장 위대하고 진정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 말이 독일보다 더 잘 들어맞는 다른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쉘링은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한 국가는 자신의 신화로서 존재하게 된다. 국가 안의 생각의 통합이라는 것은 집단적인 철학을 의미하며 이 점은 그것의 신화 속에서 제시된다. 그러므로 해당 민족의 신화는 그 나라의 숙명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동시기의 시인인 막스 멜은 니벨룽겐의 노래를 근대적 버전으로 썼는데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날 인본주의가 우리의 문화 속에 깊이 이식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리스의 신들 속에서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러나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는 항상 민족의 영혼 속에 있을 것이다!"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 브룬힐트와 하겐 - 이들은 너무나 많은 근대 독일인들이 자기 자신들과 동일시하기를 좋아한 바로 그 고대의 영웅들과 여자 영웅들이었다. 그들과 그리고 야만적이고 이교적인 니벨룽들의 세계와 - 비합리적이고, 영웅적이며, 신비한 세계, 배반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며, 폭력에 의해 압도당하고, 핏물 속에서 익사하며, 그리고 발할라와 마찬가지로 괴테르다에메룽, 즉 신들의 황혼 속에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우여곡절들 후에 보탄에 의해 불이 질러져서, 불꽃 속에서 올라간다.
이것은 자기 의지에 의한 소멸의 주신제 속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독일인들의 정신을 항상 매혹시켜 왔으며 독일인의 영혼 속에서 몇몇 끔찍한 갈망에 대답해 왔던 것이다.
이 영웅들은 이런 원시적이고 악마적인 세상 속에서 멜의 말을 빌리자만 항상 "민족의 영혼 속"에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독일인의 영혼 속에서는 문명의 영혼과 니벨룽들의 영혼 사이의 투쟁을 느낄 수가 있었고, 이 역사가 신경을 쓰는 시기에는 니벨룽들의 영혼이 우세를 획득한 것처럼 보였다. 1945년에 독일이 자신과 함께 불꽃 속에서 침몰할 수 있도록 독일의 파괴를 의도할 때 보탄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전혀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
믿기 어려운 천재성을 가진 남자인 바그너는 믿을 수 없는 위대한 예술적 거장으로 자신이 여기서 정해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대표하고 있었다.
니벨룽겐의 반지의 오페라 시리즈에서의 갈등은 자주 금을 향한 탐욕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이 부분에서 작곡자는 해당 주제를 "근대 자본주의의 비극"과 동일시 했고, 공포스럽게 파악했다. 그것은 이전 시대부터 내려왔던 옛 미덕을 쓸어버린 것이었다. 모든 이교도의 영웅들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니체가 그러했던 것처럼 기독교에 관해 완전히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부정한 죄를 범했으며 전쟁을 하고 있는 인간 종에 대해 큰 동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나치즘을 알기 위해서는 바그너를 알아야만 한다라고 말한 것은 완전하게 잘못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바그너는 먼저 쇼펜하우어 그리고 나중에는 니체를 알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비록 니체가 바그너의 오페라들, 특히 파르지팔이 기독교적인 금욕을 너무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말다툼을 하기는 했지만 니체의 사상에 공감했던 부분도 사실이다.
자신의 길고 변덕스러웠던 인생의 여정에서 바그너는 다른 두 사람의 남자와 접촉하게 되었다. 한쪽은 프랑스인이었고 나머지 한쪽은 영국인이었다. 이 두 사람은 이 역사에서 바그너에게 자신들이 준 인상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도 중요하다. 비록 주목할만한 경우는 한번 뿐이었지만 바로 그것에서 독일 정신에 대해 이들의 끼친 효과는 제 3제국이 도래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도왔다.
이 인물들은 먼저 프랑스 외교관이자 문필가인 조세프 아르튀르 드 고비노 백작과 이제껏 살았던 영국인 중 가장 기묘했던 자들 중 하나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이었다.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협잡꾼이었다고 즉각적으로 말해지지는 않았다. 둘 다 엄청난 학식을 보유했고, 문화적으로 깊은 식견을 가졌으며 여행을 통해 넓은 경험을 했다.
그러나 두 명이 모두 인종 이론을 겉으로 매우 그럴싸하게 지어냈기 때문에 어떤 이들도 아니 심지어 그들 자신도 독일인들에게서 하나의 예외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