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제국의 지적 기반 5

히틀러는 니벨룽겐의 반지를 작곡한 리하르트 바그너를 너무 좋아해

by 꿈많은 미소년

누구든지 국가 사회주의 독일을 이해하기 원한다면 바그너를 알아야만 한다."

히틀러는 이렇게 즐겨 말하곤 했다. 이 말은 그 위대한 작곡가에 관해 부분적으로는 잘못된 개념에 기반한 것일 수 있었다. 비록 히틀러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리하르트 바그너가 광신적인 증오를 유태인들에 대해서 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그너 자신은 유태인들이 그들의 돈으로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스스로 납득해 버렸고, 비록 의회 정치와 민주주의, 부르주아지의 물질주의와 재능 없는 평범함을 비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또한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재능으로" 일어나서 "지배자가 아니라 세계를 고상하게 만드는 사랑들이 될 것이다"고 열정적으로 소망했다.


이 내용이 바그너가 정치적인 글로 쓴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대단히 뛰어난 오페라들 속에서 매우 생생하게 영웅적인 신화들로 독일의 태곳적 세계를 상기하게 했다. 그 작품들 안에서 싸우는 이교의 신들과 영웅들, 악마들과 용들, 유혈의 복수를 반복하는 싸움들과 원시적인 부족의 규약들, 운명 의식, 사랑과 삶의 화려함과 죽음의 고귀함, 이러한 것들이 근대 독일의 신화들에 영감을 주었고 히틀러와 나치들이 약간 정당화하는 절차를 거쳐서 그들 자신들의 것으로 차지하게 되는 독일적인 벨탄샤우웅 이라는 개념을 제공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히틀러는 바그너를 숭배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이 종말에 다가왔을 때에도 러시아 전선에 있는 육군 본부의 축축하고 음울한 벙커 속에서 자신의 세계와 꿈들이 갈라지고 부서저 나가는 와중에서도 히틀러는 위대한 바그너의 작품들을 들었던 모든 시기에 관해서 추억에 잠겨 행복했던 나날들에 대해 떠들어 댔다.

바로 그 작품들이 히틀러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 지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바이로이트 축제와 바그너의 집인 반프리트 하우스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방문하고서 얻은 영감들에 관해서도 추억에 잠겨 말했다. 반프리트 하우스에는 바그너의 아들인 지그프리트 바그너가 영국에서 태어난 아내인 비니프레트와 함께 여전히 살고 있었다. 여기 비니프레트는 한때 히틀러의 존경을 받는 친구들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바그너의 작품들 각각이 얼마나 내게 기쁨을 주었던지!"

히틀러는 독일이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파멸적인 패배를 당한 바로 후인 1942년 1월 24일에서 25일 저녁에 소리쳤다. 그 무렵에 히틀러는 장군들과 자신의 당 패거리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중 히믈러도 끼어 있었다.


동프로이센의 라스텐부르크에 있는 볼프샨체의 지하 대피소의 깊은 곳에서 이들은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북극권의 추위가 세상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이 눈고 살이 에이는 추위는 히틀러가 그렇게나 싫어했고 두려워했던 것인데 전쟁에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후퇴를 하게 만드는 것에 기여했다.


하지만 지하 벙커의 아늑하고 따뜻함 속에서 이날 밤의 히틀러는 바깥의 추위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독일군 장병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영감을 받은 것들 가운데 한 가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난 내가 반프리트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네. 내가 감동받았다고 말하면 그건 절제된 표현인 거야! 내 최악의 순간에도 결코 내가 살아가도록 지탱해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 심지어 지크프리트 바그너도 말야. 나는 그들과 서로 세례명으로 불렀어. 나는 그들 모두와 반프리트를 사랑해.. 바이로이트 에서 있었던 열흘 간은 내 존재의 가장 축복받은 시기들 중 하나로 항상 남아 있단 말이네. 그리고 언제인가 내가 순례를 다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기쁘단 걸 말해야 겠군. 바이로이트 축제가 끝나고 다음날이 되면 나는 큰 슬픔에 빠진다네. -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들을 떼어내는 그 심정 다들 알고 있다고 믿네."



비록 히틀러가 그 겨울날 저녁 자신에게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바그너의 대작"이라고 반복해서 지껄였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독일의 고전 서사 신화인 니벨룽겐의 노래에 영감을 받은 4개의 오페라의 시리즈인 엄청나게 거대한 대작인 니벨룽겐의 반지는 바로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 본인이 자신의 최성기의 25년 간의 세월을 들여 작업을 했고, 독일과 특히 제 3제국에게 그것의 원시적인 독일 신화 체계들에 대해 많은 것을 제공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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