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라면 정권을 잡았을 때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나치당의 정치적인 조직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먼저 P.O. I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정부를 공격하고 그 기반을 약화시키는 임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P.O. II는 국가 내의 국가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그룹은 농업, 사법, 국가 경제, 내무, 그리고 노동의 각 부서를 갖추었다. - 거기다가 눈을 미래로 돌려 인종과 문화, 그리고 공학의 부서도 창설했다. P.O. I에는 외무와 노동 조합들 그리고 제국 공보실의 부서가 있었다. 프로파간다 부서는 별도로 있었고 정교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었다.
비록 당의 거친목들, 거리 싸움의 베테랑들과 비어하우스의 불한당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나치당에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곧 이들을 위한 조직들을 또한 제공했다.
히틀러 소년단은 15세에서 18세에 이르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었고 그 안에서 문화, 학교, 언론, 츠로파간다, "국방 스포츠", 등등의 부서들이 갖추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10세에서 15세에 이르는 청소년들은 도이체스 융폴크에 등록했다. 소녀들을 위해서는 분트 도이쳐 매델이 있었고 여성들을 위해서는 N.S. 프라우엔샤프텐이 설립되었다.
학생들, 교사들, 공무원들, 변호사들, 판사들 - 모두 분야 별로 나누어진 각자의 조직들이 있었고, 나치 쿨투어분트는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을 들어오도록 이끌었다.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후에 S.A.는 나치의 집회를 보호하고, 다른 정당의 집회를 두들겨 부수고 히틀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테러 활동을 가하도록 수 십만 명의 대원을 가지는 무장 조직으로 재조직되었다.
S.A.의 지도자들 중 몇몇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가 오면 자신들의 무장 조직이 정규 육군을 대신할 것을 희망했다. 이런 희망적인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프란츠 폰 에프 장군 휘하에서 특별한 부서가 설립되었다. 바로 베르폴리티셰 암트라고 불리는 조직이었다. 이것 안에는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국방 정책, 국방군, 잠재적인 민병조직 그리고 등등의 문제를 관여하는 다섯 개의 부서가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색 셔츠를 입은 S.A.는 결코 불한당 무리들이 잡다하게 뒤섞인 모임 이상의 존재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조직의 상부 지도자들은, 그 우두머리인 룀부터 시작해서 악명 높은 동성애 변태였다. 에드문트 하이네스 중위는 뮌헨의 S.A.를 이끌고 있었는데 동성애자였을 뿐만 아니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살인자였다. 이 두명에 더해서 수십 명이 툭 하면 서로 다투고 불화를 빚었다. 이들은 부자연스러운 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의 특정한 질투심으로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표출하려 들었다.
손아귀에 더 의지할 수 있을 만한 무리를 가지기 위해서 히틀러는 S.S. - 슈츠슈타펠 - 를 만들었고 그 대원들에게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이 입은 것과 유사한 검은색의 제복을 입혔다. 그리고 이 새 조직의 대원들은 히틀러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의 특별한 맹세를 하도록 했다.
처음에 S.S.는 퓌러의 경호원 이상의 존재는 아니었다. S.S.의 첫번 째 지도자는 베르흐톨트라는 이름을 가진 신문기자였다. 자신이 포엘키셔 베오바흐터의 상대적으로 조용한 뉴스룸을 경찰이나 군대 놀이를 하는 것보다 더 선호했던 탓에 베르흐톨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교체되었다. 그 다음의 지도자는 에르하르트 하이든이었고 이 자는 무척 상스러운 평판을 가진 전 경찰 밀정이었다.
1929년이 되자 히틀러는 S.S.의 이상적인 지도자로 자신이 찾고 있던 남자를 발견했다. 뮌헨 근처의 발트트루데링의 마을에서 닭을 키우던 사람으로 사람들이 작은 마을의 교장선생으로 착각하는 (본 저자도 처음 만났을 때 외모와 태도를 보고서 그런 줄로 알았다) 부드러운 매너를 가진 이 남자의 이름은 바로 하인리히 히믈러였다. 히믈러가 S.S.의 조직을 인수했을 때 대원의 수는 대략 이백 여 명이었다. 히믈러가 S.S. 두목의 일을 마칠 무렵에는 히틀러의 개인 경호국이었던 이 S.S.는 독일을 지배했고 점령당한 유럽 땅 전체에 테러를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