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트기 시작하는 생각 4

독일의 미래 사상을 비엔나에서 꿈꾸다

by 꿈많은 미소년

칼 뤼거 박사는 탁월한 웅변가였지만, 범 게르만주의 당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연설가가 없었다. 히틀러는 이 점에 주목했고 나의 투쟁에서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웅변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매우 강조했다.



역사를 움직이는 데 있어서 가장 위대한 종교적이고 정치적으로 눈사태처럼 한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힘은 연설의 마법과도 같은 힘으로부터 오며, 이것은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옛날부터 변치 않는 사실이다.

대규모의 집단을 이룬 인간들은 연설의 힘에 오로지 의해서만 감동 받을 수 있다. 모든 위대한 운동은 대중의 인기를 얻은 것이며, 인간의 열정과 감정적인 정서는 잔인한 괴로움의 여신이나 군중 사이에 말을 던지는 선동가에 의해서 휘저어지고 끓어 오르게 된다. 그러한 언어는 문학 애호가나 미술실의 영웅들과 같은 탐미주의자들의 레모네이드와 같은 달콤한 말의 분출 따위는 아닌 것이다.



비록 오스트리아 정당에서 실제로 참가하는 일은 그만두었지만, 젊은 히틀러는 이미 비엔나의 노동자용 간이숙박소, 무료 급식소, 그리고 길거리의 모퉁이에서 눈에 띄는 청중들에게 자신의 연설을 연습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술이 발전하여 재능으로 승화되었다. ( 이 책의 저자로서 말하는데, 이후에 히틀러의 가장 중요한 연설들 중의 몇몇을 듣게 되었고, 이 점에 관해 증언할 수 있다. ) 전간기의 독일에서 그 누구구보다 더 가공할 만치 무시무시하게 되었고, 결국 히틀러의 까무라칠 만한 성공의 큰 방편으로서 작동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비엔나에서 경험한 것은 유태인들이었다. 히틀러의 말에 따르면 린츠에서는 유태인이 거의 없었다.

" 집에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단어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에서 유태인 소년이 한 명 있었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 우리는 거기에 관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당시 유태인도 독일인으로 받아 들였다."

히틀러가 소년이었을 때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히틀러를 만났을 때,"

아우구스트 쿠비체크는 린츠에서 함께 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히틀러는 이미 반 유태주의를 발음하고 있었다. 이틀러가 비엔나로 갔을 때, 이미 확고한 반 유태주의자였다. 그리고 비록 비엔나에서의 경험으로 그런 감정을 더 깊게 하였을 수는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비엔나에서 반 유태주의라는 생각을 처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그 때 나는 비엔나로 왔다."



비엔나에서 풍부한 인상에 사로 잡혔다... 내 생활이 너무 고되어서 마음에 심한 압박을 받았고, 나는 처음에 이 거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내적 계층화에 관해서 통찰을 하지 못했다. 당시 비엔나에는 거의 이십 만명의 유태인이 이백 만 주민들 사이에 함께 있었는데, 그들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유태인들은 여전히 종교 이외의 다른 차이점은 없는 존재들이었고, 그래서 인간 으로서 가지는 관용을 기반으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종교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비엔나의 반 유태주의 기관지의 어조는 내게 위대한 나라의 문화적 전통이 가치 없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히틀러는 어느 날 자신이 경험한 바에 대해 나중에 다시 이야기 했다. 그날 히틀러는 비엔나 도심지를 통과해서 거닐고 있었다.

"갑자기 검은색 카프탄을 입고 검은색 구렛나룻을 얼굴 양쪽에 매단 일단의 유령과 마주쳤다. 이 자가 유태인인가? 가 내가 첫번 째로 한 생각이었다. 확실히 내가 린츠에서 보던 자들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 남자를 살그머니 주의 깊게 그 남자를 관찰핬는데, 이 이질적인 얼굴을 관찰하면 할 수록, 모습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피고 나니,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질문이 새로운 형태로 더 강하게 마음 속에서 차 올라왔다. 이자가 진정 독일인인가?


히틀러의 대답은 바로 짐작이 갈 만 하다. 그래도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히틀러는 자신이 "겉표지를 보고 자신의 의심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반 유태주의의 서적으로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당시 비엔나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많이 팔리던 책이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그 "현상"을 더 가까이서 관찰하기 위해서 거리고 나갔다. "내가 어딜 가더라도," 히틀러는 이후에 이렇게 말했다.

"유태인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태인들을 더 많이 불 수록, 더 정확하게 내 눈으로 나머지 인류와 구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이딴 카프탄 입는 자들의 냄새로 위장이 뒤집힐 만큼 구역질이 나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다음에 히틀러는 "이 '선택된 자들'에게서 도덕적인 오점"을 발견했다.

"최소한 단 한 명의 유태인이라도 관련이 있지 않은 오물이나 방탕함이, 특히 문화적인 삶에서, 있을까? 만약 그런 종기를 주의 깊게 잘라낸다고 하면, 썪어 가는 몸 속의 구더기 처럼, 종종 갑작스런 불빛에 현혹되어서는 - 키키! 하는 그런 것을 듣고야 말 것이다!"

히틀러에 따르면 이런 것에는 유태인이 크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메춘과 백인 노예들을 밀거래 해서 그들이 이곳저곳으로 팔려 나가는 물결 등.

히틀러가 언급하기로는,

"유태인이라는 족속은 냉혈한이자 수치를 모르고, 이 큰 도시의 인간 쓰레기로 사악한 밀거래를 촉발하는 계산적인 흑막이며, 내 등이 차갑게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놈들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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