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한 것을 돌려주라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바이마르 헌법의 초안의 작성이 마무리 되기 전에 피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이제 막 설립될 예정인 공화국 위에 운명의 마법을 드리웠다. 이것은 바로 베르사유 조약이 작성되었다는 것이었다.
평화의 첫 혼돈과 시끌벅적한 소란의 날들 동안, 그리고 심지어 바이마르에서 국회에서 헌법 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 중인 후에도,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전쟁 패배의 결과에 대해 거의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혹은 만약에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독일인들은 정말 대책 없이 자신감만 가득차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이 시점에 연합국들은 호엔촐레른 황조를 제거하고, 볼셰비키주의자들을 억누르고, 민주주의적이고 공화주의적인 정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었고, 그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단지 독일 제국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합중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14개조 항에 기반해서 평화로 제목이 붙여졌던 것이었다.
독일인의 기억은 단지 일 년 밖에 안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일년전인 1918년 3월 3일에 승리한 독일 제국군 최고 사령부가 패배한 러시아에게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에서 맺은 평화 조약에 부과한 내용들은 엄청났었다. 전쟁의 열기사 수그러든 이후의 이십 년을 쓴 영국 역사가는 이 조약에 관해서 "현대 역사에서 이것을 능가하거나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굴욕적인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서 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 왕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를 합친 만한 넓이의 영토를 강탈당했다. 그곳에는 러시아 전체 인구의 32퍼센트에 해당하는 56,000,000 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도 조약에 의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 만이 아니었다. 러시아 전체 철도망의 3분의 1, 전체 철광석의 73퍼센트, 전체 석탄 생산의 89퍼센트, 그리고 5,000 개 이상의 공장들과 산업 단지들을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뜯어 갔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서 러시아는 독일에게 육십 억 마르크라고 하는 거대한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강요받았고 복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예상되어지고 있던 그 날은 1919년 늦봄에 독일인들에게 찾아 왔다. 독일과의 협상 없이 연합국들에 의해 들이 밀어진 베르사유 조약의 조항들은 5월 7일에 베를린에서 인쇄되었다. 이 내용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자며 자기 자신들을 속이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던 이들에게 칼로 푹 쑤시는 것과 같은 강한 일격으로 다가왔다. 분노한 군중들의 집회가 전국적으로 도처에서 조직되었고, 조약에 항의함과 아울러 독일이 해당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마르 국회가 열려서 회기 중에 국가 재상이 된 슈나이더만은 울부짖었다.
"이 조약에 서명한 손이 시들어 말라 죽기를!"
임시 대통령이 된 에베르트와 정부는 5월 8일에 그 조항들을 "합당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규정했다. 다음 날 베르사유에 있던 독일 사절단은 절대 굽히지 않는 클레망소에게 그러한 조약은 "어떤 국가도 참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대체 무엇이 그리 참을 수 없는 것이란 말인가? 조약의 내용을 살펴보면 독일인들이 무엇을 참을 수 없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알사스-로렌 지역을 프랑스 영토로 회복하도록 했다. 그리고 독일 영토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벨기에로 귀속시켰다. 마찬가지로 슐레스비히에 있던 아주 작은 영토를 덴마크에게 주었다. - 거기다 국민투표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었다. - 저 영토들은 이전 세기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비스마르크가 덴마크인들에게서 강탈해 온 부분이었던 것이다.
비슷하게 폴란드인들에게도 약간의 땅을 돌려주었다. 그 영토들 중에서도 어느 정도는 국민투표를 거치고 나서 진행되도록 했다. 이것도 원래의 독일 영토가 아니라 과거에 폴란드 분할로 획득했던 영토를 다시 원래의 주인에게 반환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독일인들을 극대노하게 만들었다.
독일인들을 극도로 화나게 만든 이 조항들은 자신들이 남에게 뺏어왔던 땅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 그것도 무조건이 아니라 거기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서 돌려 주는 것이었다. 결코 폴란드가 바다로 접근할 수 있도록 회랑을 줌으로써 동 프로이센이 조국에서 분리되는 것 때문에만 분개한 것이 아니었다. 더 원초적으로는 독일인들이 폴란드인들을 경멸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인들은 폴란드인들을 열등한 종족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