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바다가 되고

아내의 할머니, 그리고 세드나

by 준둥

어제는 아내와 아내의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는 해산물 칼국수를 먹었는데, 많은 조개가 많이 들어 있어서 국물 맛이 참 시원했다. 할머니는 한평생을 요리를 하여 가정을 이루신 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칼국수를 한 번 드시더니 “이건 기계로 한 거네. 손으로 했다면 더 맛있었을 텐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자주 하는 말씀이 할아버지 얘기를 했다. 할머니 이야기 속에 할아버지는 무책임하고, 가정적이지 못하고, 방관적이며,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야기 속의 할아버지는 새마을 운동을 했다. 전후 남한에서는 마을을 현대화하고 선진화하기 위한 운동을 했는데, 할아버지가 나서서 그 일을 했나 보다. 당연히 밖으로 나도는 일이 많았고, 실리보다는 허울만 좋은 일이었나보다. 할머니는 과거에 오리 고기집을 운영하셨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도 없이 사람을 30명이나 데리고 왔더란다. 그들이 양껏 오리를 먹고, 술을 마시고 돈은 하나도 주지 않고 갔더란다. 할머니는 그렇게 널부러진 병과 음식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할머니는 가정을 늘 혼자 힘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제사는 참 어려운 일이었나보다. 제사를 준비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한 번도 돕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녀에게 원망스런 존재였다. 나머지 시동생들도 제사를 돕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렇게 집안 행사에서 웃고 떠드는 동안, 본인은 설거지, 청소, 음식 준비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는 나에게 자신이 아는 수많은 옛날 이야기중에서 한국의 설화 이야기 한가지를 해주었다.


옛날 옛적에 아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너무나 잘 그려서 펜 한 자루만 있다면 뭐든 똑같이 그려낼 수 있었고, 그가 다 그리고 나서 종이를 흔들면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아주 배를 곯던 남자 한 명이 있었다. 그 화가는 그 사람이 딱해서 지갑을 하나 그려주었다. 그리고 그 지갑을 열면 늘 돈이 만들어지게 했다. 가난했던 남자는 처음엔 돈이 필요할 때만 열었지만, 욕심이 커져 돈을 엄청나게 만들어 냈다. 갑자기 돈이 많아진 남자를 의아하게 여긴 경찰(관아)이 그를 찾아왔고, 모든 사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찰은 그 화가를 붙잡아 왔다.


경찰이 화가에게 묻기를,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 있냐?”, “나에게 종이와 펜을 주시오.”


그리고 그는 험준한 절벽과 산을 그리고 아주 날쌘 명마를 그렸다. 그리곤 종이를 털었다. 그러자 화가는 단숨에 말에 올라타서 산으로 도망쳤다. 이것이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다. 나는 칼국수를 먹으며 한 가지 질문을 했다.


“할머니, 만약에 할머니가 그림 그리는대로 만들어지는 능력이 있으면 뭘 그리실래요?”

“나는 젊은 날에 엄청나게 잘 생긴 남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그려볼래.”

할머니는 자신이 똑똑하다고 했다. 본인에게는 큰 오빠가 있었는데, 자기보다 12살이나 더 많았다고 한다. 큰 오빠는 늘 자기에게 똑똑하다고 한다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나는 공부를 할 것이라고,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었다.


“할머니, 그럼 좋은 남편 만나실래요? 아님 다시 공부하실래요?”

“나~? 나는 공부할래!”

“왜요?”

“나는 그냥 공부를 더 깊게 하고 싶어. 그럼 지금의 인생도 많이 달라졌을 거고, 정말 재밌게 살아보고 싶거든!”

할머니는 정말 재밌게 살고 싶다 보다.

할머니는 올해 나이가 80이다. 할머니는 최근에? 쓸개와 관련된 수술을 한 듯 하였다. 할머니는 조금만 걸어도 땀을 많이 흘렸고, 가끔 눈물도 났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피곤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할머니에게 나는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하면 되는거죠.”라고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목표는 하늘 높게 닿는 것이었는데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꽤 오랜만에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내세에는 과거의 기억을 들고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할머니가 또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말이다.


설화 전공자로서 캐나다의 세드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내가 연구한바에 따르면 이누이트 족에게는 세드나 설화가 있다고 한다. 세드나는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받아서 남편에 의해 다른 장소로 실려간다. 그 장소에서 겨우 도망치는데, 탈출 과정에서 심지어 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는다. 세드나가 그 배에 올라타기 위해서 열심히 갑판을 잡았는데, 아버지는 도끼로 그 손가락을 모두 쳐버리기 때문이다. 그 손가락은 고래, 물개, 바다표범으로 바뀐다. 그리고 세드나는 깊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끊임없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던 세드나는 다시 바다의 여신으로 좌정한다.


한국에서 설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는 잘린 손가락들이 어떻게 바다생물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다만 이는 다른 글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볼까 한다. 어쨌든 바다의 여신이 된 세드나. 그리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할머니. 세드나가 할머니를 만났다면 뭐라고 말할까? 아마도 자신처럼 슬픔과 눈물의 끝에는 신으로 좌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줄 듯하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겠지.

“이렇게 그냥 평생을 별볼일 없이 음식이나 하면서 가족만 먹여 살렸는데, 어떻게 제가 신이 될 수 있나요?”,

“부모 복도 지지리도 없고, 남편도 못 만나서 평생을 고생만 하면서 살았는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될까요?”

“제가 공부를 계속 해서 똑똑해져서 글도 쓰고 교수도 되고 그러면 신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어떻게 일만 한 제가 신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다면 세드나는 과연 뭐라고 답할까? 나는 세드나가 아니라서, 바다의 신은 더더욱 아니라서 그냥 마음만 조금 헤아릴 뿐이다. 슬픔을 통해 어떻게 세드나는 신이 되었을까? 그리고 할머니는 어떻게 신이 되어가는 걸까?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의 할머니를 바라보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늘 시간이 부족한 우리에게 인생은 왜 질문만 야속하게 던지는 걸까?


그렇게 눈물은 바다가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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