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인생에서 딱 그때 무언가 깊은 의미 있는 오솔길이 만들어질 때가 있다.
나에게 소중한 안식처로 기억되는 호젓한 오솔길은 열네 살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줄공책에 날짜와 날씨를 적고 제목을 정한 그림 일기장은 늘 누군가에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생이 되니 일기장 검사가 없다는 사실이 내심 신기했다. 한편으로 허전한 마음도 있었으니 나는 무언가 살피고 끄적이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중1 때 국어 담당이신 담임 선생님이 누군가에게 보이는 검사받는 일기가 아닌 나만의 비밀 일기장의 중요성을 알려주셨고 나는 감동을 받았다.
열네 살 그 시절 미니 자물쇠가 있는 일기장을 시작으로 나의 일기 쓰기는 60대까지 다양한 형식이지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편지글이든 하루의 기록이든 독후감이든 그저 내 살아낸 기억을 남기는 건 너무도 소중했다. 일기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이 아닌 나와 내통하는 법과 맛을 알려주신 분이 바로 중1 담임 선생님이신 '이현란' 선생님이시다.
그 당시 우리 반 국어 수업 담당은 '전옥숙' 선생님이신데 담임 맡은 반의 수업은 시험 점수 공정성 문제로 어긋나게 맡는 거라고 얼핏 기억되는 일이었다.
두 분의 국어 선생님은 절친이셨고 난 두 분의 관심과 공정한 사랑법을 늘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의 기준에서 '다행히도 만난 사람' 덕에 이쁘고 고요한 오솔길을 얻게 된 중학교 1학년 봄이 기억된다.
그 당시 학교 글짓기 대회나 물자절약 글짓기 같은 자잘한 행사에서 이현란 선생님은 공정하게 심사를 치르셨고 덕분에 몇 번 얻어걸리는 듯 당첨의 기회가 나에게 여러 번 왔다.
조회 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구령대에 나가서 상장을 받으며 어리둥절한 나의 그 시절은 아주 맑은 오솔길로 의미 있게 거닐던 시간이었다.
국어 시간에 전옥숙 선생님은 느낀 점을 발표시키거나 짧은 글쓰기를 시키며 자주 나를 지목하셨다. 어느 가을날 수업 시간에 즉석에서 코스모스라는 주제로 시나 동화를 적으라는 숙제를 주셨고 나는 그때 원고지에 한 글자씩 메꾸어 나가며 참 행복했고 짜릿했다.
다음 수업시간에 전옥숙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을 교실 뒤편 게시판에 직접 압정으로 꽂아서 두었고 반 아이들은 틈나는 대로 그 앞에 모여서 읽었다.
" 코스모스가 처음에는 가늘지 않았는데 길가마다 사람들을 반기며 흔들거리다가 줄기가 가늘어졌다니 재미있는 표현이네 "
" 꽃모양 가운데가 선물 받은 왕관이라는 게 실감 난다"
친구들이 내가 쓴 동화를 읽으며 나를 칭찬해 주니 어리둥절했다. 아니 기분이 최고였고 자존감이라는 작은 덩어리가 꿈틀거렸다.
가을 운동회 때 중요 행사로 가장행렬에도 참여하고
학년말에 학예회를 준비하며 이현란 선생님은 나에게 연극 대본을 써보라고 권하셨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이수일과 심순애'를 각색하고 이수일 역할을 맡았다. 우리 반 전체가 합동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에 모두 뿌듯한 소녀가 되었다.
이현란 선생님은 다양한 도서 리스트를 주시며 '독서는 힘'이라고 강조하셨고 다음 해 전근을 가셨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책을 접할 방법도 번잡했고 나의 독서 욕구도 솟구치지 못했다. 그때 나의 독서합이 맞아서 추천해 주신 도서 리스트로 다독을 했다면 이후의 나는 달라졌을까를 가만히 뒤돌아보곤 한다.
질펀한 시간이든 뽀송한 시간이든 내가 글을 통한 위안과 존중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일들은 열네 살 시절의 두 분 선생님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20대에도 괜스레 멜랑꼴리 한 습작들로 일기장을 채우고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보내고 청춘도 누리며 사랑도 해보고 두 딸의 엄마도 되었다.
큰딸 출산기가 육아 잡지에 당선되었고 지역 백일장에서 일상적인 글로 소소한 상품을 탐하며 입선도 하였다.
막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1년 동안 사회생활 공백기에 수필로 등단도 하였다. 열네 살 때부터 꾸준히 오솔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잘 걸어온 시간이 아니었을까?
나는 언제든 내가 문학인으로 나설 때를 생각해서 '최현숙'이라는 필명을 지어 두었다. 이현란 선생님과 전옥숙 선생님, 그리고 나의 최 씨 성을 합한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의 마음속 글 쓰는 자아는 최현숙이다.
인생 황혼기에도 성찰을 하며 글쓰기를 위해 정진하는 나날이 되기를 희망했던 나는 이제 드디어 완숙미를 보여 줄 60대에 접어들었다.
2024년 10월에는 청년 지원 사업에 선정된 큰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였다. 2019년 7월 제주 한달살이 중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배경으로 쓴 동화 '바다가 품은 이야기 '를 큰딸이 낭독하는 새로운 개념의 낭독 콘서트를 경험하게 되었다.
'엄마의 글과 딸의 목소리'라는 포스터 부제목을 보니 왠지 나의 소중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루어지는 듯 감동이 진하게 느껴졌었다. 공연 포스터에 이름을 새기고 프린팅 제작의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본명보다 나만의 필명인 최현숙으로 이름을 넣기를 희망했다.
내 이름에 대한 불만이 있어서라기보다 나의 문학적 구도자가 되어준 두 분 선생님을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가족들에게도 최현숙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들려주는 내 안의 소중한 오솔길로 초대하였다.
열네 살의 나는 분명 교실 뒤편의 게시판 앞에서 내 글을 보며 진정한 자존감을 느낀 걸 기억한다.
유명한 작가만이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시간이었다.
나만의 오솔길은 내 안에서 소중하게 간직하면 행복이라는 걸 스스로에게 분명히 말해주었다.
60대부터는 최현숙이라는 이름이 많이 회자되면 참 좋겠다.
최## 더하기 이현란 더하기 전옥숙!
최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