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영화 원작 읽기

by 리단쓰

9월 영화원작 읽기 모임의 리스트는 '피아노 치는 여자'라는 책과 영화는' 피아니스트'로 상영된 작품으로 정하였다.

피아노 치는 여자는 엘프리데 옐리네크라는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오스트리아 작가이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인증된 문학동네의 출판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이다.

한편에서는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선입견적 평가로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정의가 규명되기는 확실한 점이 없어서 어떤 평가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문학적인 지향점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애서 여성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도발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아마도 페미니즘적 요소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늘 그렇듯이 영화원작인 소설을 먼저 접하였고 책을 읽는 동안 영상으로 표현될 내용들이 무척 궁금해졌다.

여성작가로서 주목을 받는 점에서 천재성이나 다양한 실험정신이 기존의 틀에서는 거부감도 들거나 반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책 읽기를 하였다.

언어적인 표현들이 엄청 노골적이며 묘사 하나하나에 은유적인 듯 직접적인 묘사들이 일면 매력적인 느낌도 가지면서 책 읽기를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쓰는 문학의 중심을 페미니즘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표명하였다니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의 문제제기가 파격적인 면도 느껴졌다.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라는 점에서 작가 개인사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데 엄마의 강압적인 인생항로에서 피해를 받고 상처를 얻으면서 성장기를 보냈고 의식이 자란 후 성인이 되어가면서 반항적인 면으로 자신의 길을 잡았다는 인터뷰도 있으니 주인공 에리카와 작가는 사실은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의 줄거리는 엄마의 잘못된 소유욕과 욕망의 컨트롤이 빚은 오류로 비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장치되어 있었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어린 딸에게 사실은 보통정도의 재능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욕망이 첨가되면서 마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는 양육방식으로 일관하면서 30대 중반의 어른이 된 딸의 독립적인 성장을 허용하지 않는 잘못된 모성애가 비극의 전제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요즈음도 시대적으로 회자되는 헬리콥터맘이라는 양육방법이 평범하게 살아가며 음악 속에서 행복을 누릴 수도 있는 주인공 에리카의 삶을 망가뜨리는 내용이 아닐까 안타까웠다.

피아니스트로 큰 성공을 꿈꾸다가 피아노 음악원의 강사로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에리카는 피아노를 치는 것 외에는 많은 부분이 미숙한 상태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과보호와 감시 통제 속에서 자아정체성을 기를 타이밍을 잃은 어른아이 같은 에리카는 30대 중반에 제자인 발터 클레머의 애정공세에 전혀 대응하거나 교류도 못한 채 수동적인 자세로 지내다가 적극적이고 욕망추종적인 클레머의 대담한 성적 공격을 공중화장실에서 겪게 된다.

자신의 욕망이나 성적인 성장을 이해하지도 못한 어설픈 성인이 되어버린 에리카는 관음증과 비정상적인 성욕해소를 하는 편이라서 클레머의 성욕을 받아낼 수 없었다.

자신에게 매달리는 클레머를 지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에리카는 변태적인 마조히즘으로 클레머를 당황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남녀의 사랑나누기를 갈망하는 클레머는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에리카를 이성적으로 좋아했다가 자신의 감정이 무시되고 일방적인 에리카에게 결국 사랑의 감정이 분노가 되어서 에리카가 제시한 마조히즘적 폭력의 성욕을 보여주며 상처로서 복수하게 된다.

수동적이고 늘 지배만 받은 에리카는 클레머에게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받기라도 하려는 듯 권력적으로 군림하며 성욕을 해소하려고 하는 잘못된 방식 때문에 도리어 클레머에게 수동적인 위치에서 속수무책 상처를 받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려 클레머에게 복수하려는 듯 칼을 품고 갔지만 결국은 자신의 어깨에 자해를 입히고는 다시 엄마의 지배세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소설적 묘사들이 19금 야설을 느끼게 하는 묘사들과 당황스러운 표현들이 있었지만 글이 주는 묘한 매력으로 조용히 음미를 하는 관음적인 독자가 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영화에서 소설의 내용을 잘 표현할까 가 궁금해졌다.

나 혼자만의 독서가 아닌 팀원들의 책 읽기 소감이나 영화평을 나눈다는 점에서 많은 호기심을 남기기도 하였다.

자칫 잘못 표현되면 야동을 보는듯한 저렴한 느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영화 '피아니스트'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과 이자벨 위페르라는 여주인공, 브느와 미지엘이라는 남자 주인공이 연기를 하였다.

배우들의 이름등을 잘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여주인공 이자이벨 위페르의 느낌이 작가 옐리네크와 이미지가 많이 닮아 있어서 놀랐다.

이지적인 듯 차가운 인상에 무표정의 모습과 올백머리와 단발로 풀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다른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모습에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몰입도는 최고였다.

활자로 만났던 기이한 내용들을 영상으로 직접 표현되는 것을 보니 원작과 영화는 왠지 거리가 있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지면서 영화감상을 하였으니 아마도 이번 독서는 영화보다 원작에 큰 비중을 남길 것 같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90년대 후반의 사회적 정서에는 파격성을 가진 작품이었고 금기시되었던 여성 성욕의 표현과 사디즘과 마조히즘등의 성욕의 변태스러움들 그리고 관음증까지 표현해 낸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내가 피아노 치는 여자라는 책을 만난 것은 신선한 충격인 듯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성적인 문제제기에서 신선함을 주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남긴다.

이 소설이 호불호가 나뉘는 평가들이 있다면 나는 호감 쪽에 손을 드는 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이 어떤 성장요소 못지않게 정상적인 궤도로 교육되길 바라는 마음도 생겼다.

현실적으로 음지의 커다란 부분인듯한 인간의 성적인 부분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교육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때는 구성애 씨의 아우성이라는 강좌에 열심이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청소년기부터 자신의 욕망을 정면승부하면서 자기화시킨다면 가여운 에리카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

에리카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전에 휴머니스트가 되었다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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