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수필

by 리단쓰

자그마한 손잡이를 달랑거리며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겨우 4살 된 딸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는 번거로움은 잠시 잊게 된다. 반찬만 준비하는 유아원의 도시락은 사실 집에 있는 작은 용기들로 충분할 것이다. 하나 빨간색, 노란색 뚜껑에 아기자기한 칸막이가 있는 2단짜리 도시락이 너무 앙증맞아서 덥석 사게 되었다. 마치 내가 도시락의 주인인양 손 끝에 걸치며 신바람이 난다. 문득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허허로움의 반작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기억이 난다. 집에는 왜 그리 노란 철제로 된 도시락이 많기도 한지 새 도시락 타령은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그나마 제일 작고 귀여운 도시락을 차지하게 되었다. 새것이 아닌지라 군데군데 노란 칠은 벗겨져 희끗거리고 뚜껑이 닫히는 부분은 하얗게 변색된 철제도시락! 뜨거운 밥기운에 엉겨서 가끔 회색 물방울이 맺히면 영 기분이 안 좋았다. 반찬도 기다란 병에다 담게 되니 도시락이 가방을 가득 차지하곤 했다. 도시락 한 편의 칸막이는 허술해서 어쩌다 기름지거나 국물이 있는 반찬을 담게 되면 밥이 아니고 잡탕이 되곤 하였다. 숟가락 젓가락은 왜 따로 준비 안 하고 밥 위에 얹는지 점심시간에 뚜껑을 열고 그것을 빼내면 푹푹 박혀있는 자욱에 심술이 나곤 했다. 몇 알 더덕더덕 붙어있는 밥풀을 입으로 떼어먹기도 했다. 당시에는 나만이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철제 도시락에 비슷비슷한 반찬을 먹던 시절이었다. 하나 가끔 예쁜 도시락에 아이들이 군침을 흘릴 반찬을 싸 오는 아이 때문에 속상한 적도 있었다. 5학년때 짝꿍을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하얀 플라스틱에 귀여운 고양이가 만화처럼 그려져 있는 도시락을 싸 오던 아이였다. 물론 숟가락과 젓가락은 기다란 수저통에 따로 담아 밥풀을 뜯어먹는 일은 없었다. 상대적 빈곤감을 매일 점심시간마다 느껴야 하니 어린 나이에 속앓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가 짜증스러운 날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도시락을 꺼내놓고 마구 패대기를 쳤다. 남은 반찬들은 튕겨져 나왔고 밥풀이 굳은 채인 숟가락, 젓가락도 떨어지고 난리였다. 마음속에 쌓였던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하면서 엉뚱한 심술이 터진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정신을 차리고 방안을 보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워낙 소심하고 겁 많은 나로서는 엄마의 호령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 누리끼리한 도시락을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내가 미쳤지 어쩌다가 이랬나?’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당시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이었다. 무조건 무릎을 꿇고 기도부터 올렸다. ‘하느님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지 못하고 심술부리는 딸이 되었습니다. 제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엄마가 많이 혼내지 않게 해 주세요’ 거의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달래 보려 한참 기도를 올렸다.


순간 무조건 혼나지 말고 도시락을 고쳐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망치와 벤치를 찾아서 더러운 도시락을 씻고는 수리에 들어갔다. 찌그러진 곳은 숨을 죽이며 폈고 그래도 우글쭈글한 부분은 바닥에 대고 망치로 톡톡 거리며 다듬었다. 숙제도 안 하고 긴 시간을 공들인 덕에 생각보다 멋진 도시락이 되었다. 어쩜 새것이 아니었기에 표시가 안 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도시락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설거지통에 담가두자 마음이 놓였다. 저녁에 설거지하는 엄마가 눈치채실까 괜스레 부엌을 서성거린 불안감과 미리 해두지 못한 숙제 때문에 저녁시간이 분주한 걸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그즈음의 마음고생을 기점으로 도시락은 교과서처럼 평범한 일상이 되었고 투정이나 심술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하나 당시에 예쁜 도시락에 대한 열망이 나의 잠재의식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가끔 느끼며 살게 된다. 딸아이의 도시락을 새것으로 사주는 마음 깊은 곳에도 어쩜 어린 시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증과 여린 슬픔의 잔재가 꼬드긴 까닭이 아닐까 해석하는 나는 예민한 엄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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