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수필

by 리단쓰


뒷모습으로 먼저 기억되는 분이 계신다.


나를 이름 그대로 불러주셨고, 난 그분을 항상 아버님이라고 불렀다.


시아버님과의 시간은 무척 짧았다.


그럼에도 많은 흔적이 엉겨있어 삶의 곳곳에 그분의 따스함과 가르침을 만나며 살게 된다.


1.4 후퇴 때 월남하여 모진 풍랑 속에 가족을 일구시며 지내다 오십이 다 되어 낳으신 막내아들이 장가들었으니 며느리를 막내딸처럼 사랑해 주셨다.


결혼 전에 시댁에 가면 현관에 놓여있는 신발을 정돈하시면서 유독 내 신발을 들어 보이시며 혼잣말을 하셨다. ㅡ시댁 식구의 신발크기는 기본이 250 이상이다.


“우리 현숙이레 발이 됫세이 귀엽구먼, 덩말로 앙증맞구나. 야.”

더러운 신발에서 냄새는 안 날까 안절부절 바라보면 아버님은 뒤로 앉으신 채 내게 흐뭇한 미소를 던져주신다. 워낙 성격이 털털한 나의 설거지 솜씨는 물 전쟁이 날 만큼 우당탕 해치우는 편인데 싫은 기색 없이 마른걸레로 조용히 바닥을 닦으시며 마무리를 하신다.


처음부터 아버님의 꼼꼼함을 좋아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친정아버지는 그냥 존재 자체로 계신 분이지 이것저것 참견하시는 편이 아니라 시아버님의 성격은 내겐 숨 막힐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이든 그분의 따스함은 진실되었기에 결혼 후 짧은 시간 동안 내겐 커다란 산(山)으로 자리하신 분이다. 강직한 성격으로 돈을 모으는 재주는 마다하셨고 칠 남매라는 적지 않은 자식들 수발에 성실함 하나만으로 버틸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일본 유학을 갈 정도로 부유함이 보장된 이북생활과 다른 현실의 괴리감을 안은 채 직업 전선에서 힘겹게 인생을 꾸리시며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가 짐작된다.

더구나 첫아들은 남겨둔 채 임시로 피난 오신 이산의 아픔을 헤아리자면 감히 이해하기 어려운 심연(深淵)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시댁 식구들 추억 속에는 아버님의 따스함과 가족 사랑의 극진함이 많이 묻어 있었다. 남편은 자주 ‘가족주의’에 얽매인 채 이기적인 사랑을 하신다고 젊은 혈기로 비판도 하곤 하였지만 빈손으로 월남하여 가정을 꾸리는 절박함을 이제서 철들며 깨닫게 되었다. 항상 허허 웃으시는 모습에 180이 되는 큰 키와 수려한 외모는 아버님의 모습을 정말 멋지게 만들었다. 아버님과 약간 뒤처지며 걷노라면 훠이훠이 약간씩 리듬을 타며 흔드시는 걸음걸이가 멋지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막내까지 가르치고 결혼시키려니 경제력에 대한 느슨함이 없으셨다. 그래서인지 칠십이 넘으셔도 멋진 필체를 발휘하시며 부동산 일을 놓지 않으셨다.

결혼 당시 자그마한 전세방을 얻으러 다니는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면서도 모른 채 하시기에 아버님 부동산에는 매물이 없는 줄 알았다. 세상 물정 모르고 온갖 고생한 끝에 지쳐있는 우리에게 은근히 아버님 가게 부근의 멋진 방을 보여주셨다. 나중에서 알았지만 이미 주인과 많은 타협을 해두신 뒤였고 다만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시느라 뜸을 들이신 거였다. 아마 우리가 마음대로 덜컥 결정했다면 무척 섭섭하셨으리라!

워낙 아담한 집에 주인은 본채, 우린 별채의 구조라 신혼집으로서는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넓은 정원을 주인과 똑같이 내려 다 보며 지낼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비 오는 날 커다란 창으로 잔디밭을 내다보면서 아버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여러 번 가졌다. 아뿔싸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그 집은 아버님 가게에서 너무 가까웠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아버님 가게로 통과의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편하게 생각하자면 별일도 아니겠지만 한창 자유분방한 신혼에 맞벌이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커다란 부담이었다. 기다란 소파와 눅눅한 책들이 즐비한 아버님 가게에서 작은 잔에 커피를 마시며 아버님의 궁금증이 가득한 시선을 안은 채 하루 일과를

보고한다는 게 나 같은 천방지축의 성격에는 미칠 노릇이었다.


어느 날 직장에 일이 있어 연탄불이 꺼졌으리라 걱정하며 늦게 돌아와 보니 새파란 불꽃을 피우며 있는 게 아니던가? 그제야 아버님이 여분으로 가지고 계신 열쇠에 생각이 미쳤고, 출근시간에 늦어 그냥 담가둔 그릇들이 신경 쓰여 안절부절못했다. 어떤 날은 대충 한쪽에 세워두고 쓰는 함지박을 예쁘게 송곳으로 구멍을 내어 빨래 줄로 고리를 만들어 한쪽 벽에 걸어 놓으셨다.편하게 생각하라는 남편의 다독임도 나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지 못했다.


바람이 몹시 세찬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니 아버님이 다녀가신 흔적은 있는데 무슨 일을 해 놓으셨는지 눈에 띄지가 않았다.

갸우뚱거리며 대충 집안 정돈을 마치고 앉았다.

집안이 훈훈하다고 느꼈지만 보일러가 한창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창문틀에 아버님의 사랑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게 아닌가? 테이프로 고정시키는 방한용 스펀지가 넓은 창틀과 방문, 현관문에 노랗게 얼굴을 내민 채 아버님처럼 웃고 있었다. 이후 여러 번 아버님에게 있는 여분의 열쇠를 돌려받자고 징징거리던 터에 눈치를 채셨는지 자연스럽게 건네주셨다. 변변한 점심 한번 해드리지 못한 채 끓여드린 국수를 맛나게 드시며 흐뭇한 웃음을 주시던 아버님! 가끔 들러 커피 한잔에 이야기 친구가 되기를 꺼리던 나의 이기성! 때론 아버님을 피해 빙 돌아 귀가하던 불효의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많은 기억들 중에서 비 오던 날의 아버님 뒷모습은 화인(火印)처럼 가슴에 남아있다.


주룩주룩 가을비가 내리던 날, 몸살기운이 겹쳐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던 오후에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귀찮은 마음속에 어쩜 아버님이 전화해서 내려오라 하실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비몽사몽으로 떨쳐내고 있었다. 한참 뒤에 초인종이 울리기에 시간을 보니 남편 퇴근시간으로는 이른 편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나가니 아버님이 우산 속에서 안쓰러운 얼굴로

걱정이 태산이시다.

“야, 내에 오늘 한 건 해서. 맛난 것 사 먹으라, 야 어머니한테는 비밀이야,”

당황한 나는 들어오시라는 말씀도 못 드리고 엉거주춤인데 벌써 아버님은 골목길로 내려가시며 손을 저으신다.

“현숙이 들어가라, 날씨래 쌀쌀하누만, 날래 들어가라”

우산 쓴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얀 봉투만 만지작만지작 얼이 빠져 있었다.


아버님을 땅에 묻던 장례식 날도 그날의 뒷모습이 떠올라 더욱 오열하였다.


사진 속의 아버님을 바라보아도 “야, 나는 괜티않아, 내레 걱덩말고 잘 지내라.”

자식걱정을 먼저 하시며 훠이 훠이 손을 내저으시는 뒷모습만 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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