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카페에 앉자마자 호출기가 삑 빅 거 린다.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울리는 그 소리는 왠지 불길하다. 약속이 취소되거나 아니면 늦겠다는 전갈이 녹음되어 있으리라...... 오랜만에 보기로 한 여고동창! 역시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예정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겠다는 마지막 음성을 들으며 재발신 버튼을 누른다. 거스름돈은 60원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엉뚱하게도 일산에 사는 대학동창에게 전화를 무작정 걸어본다. 덜거덕 전화 걸리는 소리와 동시에 역시 다급한 목소리가 흐른다. 왜 그리 급하냐는 물음에 친구의 목소리는 차분해지질 않는다.
“야, 애들 둘 , 점심 먹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 건강을 묻고 안부 전하며 진짜로 하고픈 말은 자꾸만 머리를 숨긴다. 얼마 전 너희 집 근처에 잠깐 들렀는데 네 생각이 나서 오늘 갑자기 연락하는 거라고 우물거린다. “집 근처에 왔으면 잠깐이라도 들르지? 섭섭하다.”미안한 마음에 은근히 하고픈 말을 건네본다. “응 사실은 며칠 전 백마에 갔었어. 너 알지? 그게 일산 바로 옆이더라?” “나도 여기 이사 와서야 알았어. 그렇게 다녔는데 왜 몰랐는지 우습더라.” 왠지 친구의 목소리가 힘이 없게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일로 가느라 들르지 못했다는 변명과 함께 한가한 날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마무리한다. 만나기로 한 친구는 어차피 기다려야 하겠기에 우선 커피를 한 잔 시킨다. ‘헤이즐럿’이라는 메뉴판의 커피이름을 대며 우아하게 앉아서 음악을 듣는다. 가슴이 콩닥거리며 수첩을 꺼내 ‘백마여행’이라고 적어놓는다. 스무 살 시절에 우리들 가슴에 ‘낭만’의 한 자락으로 남겨져있는 ‘백마’를 떠올려본다. 신촌역에서 기차를 타고 백마역이던가 이름도 아스라한 어느 역에서 내려 기찻길을 한창 걸어가면 허름한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우리는 ‘백마’라고 불렀다. 친구의 생일이라든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 남자친구가 한턱낸다고 하면 그곳으로 가서 괜스레 분위기를 잡곤 했다. ‘화사랑’이라는 카페를 대표적인 이름으로 내세우며 노래와 술과 분위기에 젖던 시절이 있었다. 남의 잘 가꾸어진 밭의 으슥한 곳에 가서 어색한 만남의 종지부라도 찍으려는 듯 손목도 잡고, 포옹도 하고 입맞춤도 하는 연인들이 무척 많았던 곳이다. 요즘에야 노골적인 애정표현을 하는 신세대가 많지만 80년대의 우리는 낭만의 연애사를 그럭저럭 촌스럽게 꾸리던 세대였던 것 같다. 그곳을 잊고 10년 정도를 지냈건만 새삼스럽게 등뒤의 세월을 안아보게 된다. 일산에 이사 가서야 거기가 백마라는 걸 알았다는 친구의 웃음 섞인 말처럼 나 역시 그 당시에는 머나먼 시골길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그곳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화사랑’을 10년이 지난 요즘에 가보았다.
간단한 30 포기의 김장을 마치고 오빠네 내외와 함께 기분전환도 할 겸 가게 된 곳이 바로 거기였다. 근사한 한식집이나 경양식집도 자리하고 있지만 ‘노래마을’이라는 곳과 ‘화사랑’은 어찌 되었건 당시의 분위기를 지키고 있었다. 나무토막 의자와 가운데의 통장작불 난로, 그리고 노래를 가끔 불러주는 지저분한(?) 긴 머리의 주인이 있었다. 20대의 처녀 총각들이 이젠 딸 하나씩을 앞세우고 들어선 카페는 그런대로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어색함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며 우리의 20대를 열심히 떠들어댔다. 옆에서 한몫 거드는 아이들의 소란함이야 감수해야 알 세월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장작불 속에 맛있게 구워지는 군고구마를 불우이웃 돕기 성금과 맞바꿔 호호 껍질 벗겨가며 먹어대는 아이들이 마냥 신났다. 손님의 구색에 맞추어 흘러간 우리들의 노래를 기타 반주에 실어 불러주는 주인아저씨의 긴 머리가 정겨웠다. 홍조 띤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니 왜 그리 세월이 등뒤를 시리게 했는지 괜한 막걸리만 술술 마셨다. 운전 때문에 술 먹는 시늉만 했던 남편 대신에 신나게 먹은 나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온갖 고생을 했고, 영문 모르는 딸아이는 처량 맞게 외숙모의 무릎에서 엄마를 바로 보았다. 백마에 다녀온 이후 한동안 두통에 시달리며 한번 더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막걸리 몇 잔에 엉망이 되는 나의 건강은 30대 중반의 세월을 닮아버렸다.
그날이 너무도 좋았다던가 역시 추억 찾는 데 성공했다는 것보다는 우리들 저편의 20대에 대한 사소한 일들을 수다 떨고 싶은 열망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건만 아이들 수발에 정신없는 터에 그런 수다는 어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내 마음속의 나락만큼 그 친구도 허전함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노래를 좋아하던 그 친구는 첫 미팅에서 만난 남자친구와 그곳에 자주 갔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이 된 그와 만든 일화가 있기에 더욱 떠올랐던 것 같다. 한창 연애가 무르익을 즈음에 그들도 백마에서 나란히 들길을 걷다가 앞장서 가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뒤돌아서며 내 친구에게 입맞춤을 하려 했는데 친구의 입술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유난히 키가 작은 내 친구는 유난히 키가 큰 남자친구의 어깨밑에서 한참 올려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민망해진 그는 기껏 한다는 말이 “남들 키 클 때 넌 뭐 했니?” 이 한마디였다.
그 사건으로 한동안 그들이 냉전을 벌였던 일은 가끔씩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일화이기에 백마에 두고 온 우리들의 젊음은 생생하다. 가까운 날 그 친구와 백마에 가서 우리들 등뒤의 세월을 꼭 안아보며 아이들과 함께 부산한 시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