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by 리단쓰

오래전부터 넷플릭스에 리스트업 해두고 벼르던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었다. 보기 편한 곳에 탭을 세팅해 두고 쟁반에 귤을 그득하게 담아서 아늑하게 자리 잡고 보는 영화라니 충분히 만족 백배의 시간이었다. 진즉부터 추천을 받고 궁금했는데 이번 달 독서모임 텍스트 내용 중에서 언급된 영화 제목을 보고 다시 한번 호기심이 생겨서 꼭 봐야겠다 생각하였다.

일본 공공 화장실의 청소부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영화라는 개괄적인 설명은 틀리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내면이 가득 채워진 시간들이라 감동스러웠다. 대사를 도대체 몇 마디를 하는 건지 셀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무성 영화 같은 전개와 반복되는 일상의 전개를 지켜보며 자꾸 큰 거 한방이 몰려올 것 같다는 내밀한 긴장감을 안으며 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엄청 커다란 느낌을 안게 되는 풍족함을 얻게 해 준 영화로 남게 될 '퍼펙트 데이즈'가 기억될 것 같다.


일단 감독에 대해 알아보니 감독 '빔 벤더스'의 영화는 주로 여행이나 고독, 소통의 부재를 다룬다고 알려졌다. 그의 카메라는 정적인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며, 인물들이 길 위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시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라는 평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절로 수긍이 가는 편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히라야마는 자신만의 질서를 가진 고요한 수행자 같은 인물로 묘사되어서 흥미롭게 살펴보게 되었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루틴은 영화에 몰입하면서 내가 움직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숙지되어서 혼자 미소가 지어졌다. 정교한 루틴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특히 중요한 좌표의 루틴인 듯 보이는 새벽에 들리는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고 정성스럽게 화분에 물 주고 나면 작업복을 입고 출근 전 집 앞의 자판기에서 캔 커피하나를 사서 차에 오르는 출발점등이 은근 중독되는 재미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도쿄 시내의 공공 화장실로 출근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퇴근 후에는 대중목욕탕에서 씻고, 지하철역 식당에서 술한 잔을 마신 뒤, 헌 책방에서 산 책을 읽다 잠드는 루틴이 스며들게 된다.


그러는 중 소원했던 여자 조카의 출연으로 일상의 루틴이 흐트러지는 듯 오히려 단단해지는 반전의 느낌도 감동스러웠다.


특히 감동백배인 장치는 바로 점심시간마다 공원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데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그의 유일한 취미라는 게 크게 다가왔다. 그 의미를 알게 되고는 이상스럽게 충족함을 배운 듯 뿌듯한 마음이었다.


'코모레비'의 뜻이 자막으로 나오는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 순간은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라는 뜻이라니 멋지고 멋지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가 가출한 조카 니코와 자전거를 타며 나눈 대화가 찡하게 울림을 주었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너무 멋진 삶의 지표가 아닌가? 나 자신의 모토를 확인받은 듯 엄청 심쿵 포인트였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오직 현재(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에 집중하는 그의 삶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문장이어서 더욱 각인되었다.


이제 오늘을 살아내려 소중하게 발구르기를 할 때 한번 즈음 외쳐보고 싶을 듯하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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