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눈동자는 자세한 내용을 기억 못 해도 90년대 대표적인 드라마이고 윤여옥과 최대치의 사랑 그리고 장하림의 아린 사랑이야기로 전부 설명된다.
'여명의 눈동자' 뮤지컬을 보기로 했지만 과연 복잡다단한 사랑의 관계와 엇갈림을 담아내고 그 안의 역사적인 흐름을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졌다. 2019년 공연이나 이후 공연은 세종문화회관등 잘 차려진 공연장에서 꾸려졌고 캐스팅 배역들도 제법 인기 있는 가수나 배우들이 포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25년도 12월부터 26년도 1월까지 공연을 올리는 이번 무대는 장소가 너무 의아스러웠다. 스치듯 다녔지만 동작역 부근의 공연장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는데 역시 공연장에 도착하고 궁금증은 염려로 바뀌었다. 동작역 출구 앞 근린공원의 주차장 공간에 진짜 휘장 두른 모양새로 만들어진 무대는 동춘서커스를 보러 온듯한 싸한 느낌이 들었다. 여유 있게 도착한 관객들은 주변 인프라가 너무 취약해서 다들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입장 전 대기실 역시 캠핑 온듯한 임시 천막에서 열악한 전열기구로 콧물을 훌쩍이며 대충 차려진 간식과 음료로 시간을 보내야 했으니 도통 기존의 공연장 대접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홍보차량에서 보이는 숙취음료 제품의 홍보영상을 보며 순간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애주가들이면 한번 즈음 들었을 숙취음료인 '여명'이라니 진짜 90년대 나의 정서를 휘몰아친 '여명의 눈동자'를 어찌 이리 가볍게 다루는지 입장 전부터 화가 슬며시 올라왔다. 더구나 입구에서 사은품이라고 여명 숙취음료를 하나씩 나누어주니 공짜 좋아하는 나의 손은 덥석 받기는 했으니 웃픈 시작이었다.
공연장에 들어서며 화장실 위치를 묻자니 더 기가 막혔다. 없다니 공연장에 화장실이 없는 천막이고 지하철 역사나 근린공원 공영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안내에 무언가 맥이 빠지는 느낌과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금액대비 준비가 너무 허술하다는 말들이 들렸다. 나 역시 남편과 서로 어이없는 웃음을 나누고 1부 공연까지 보고 여차하면 2부는 포기하고 귀가하자고 이야기를 나눌지경이었다.
무대가 360도 관람방식이라더니 역시 건너편 관객과 아이컨택하는 의자 배열에 가운데 무대는 마치 미니 스케이트장의 링크 같은 모양으로 세팅되었다. 관례대로 공연 전 사진촬영만 허용된다니 이곳저곳 인증숏은 열심히 찍었다. 가족톡에 사진을 공유하면서 두 딸들에게 마구 폭로성 열폭을 하며 노래이든 연기로 감동을 안 주면 중간에 나갈 수도 있다고 사진을 올렸다. 나는 뮤지컬을 보러 왔는데 아마도 서커스 공연을 보여줄 요량인 것 같다고 하면서 톡을 나누었다.
드디어 공연 시작이 되었고 나는 시작부터 배우들의 열정과 무대장치의 절절한 노력의 흔적이 숙연해지고 다시 훼손되지 않은 90년대의 나의 최대 작품인 '여명의 눈동자'에 몰입되었다. 때론 최상이 아니어도 최선의 모습에 감동이 남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최선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서 괜스레 나 역시 무대를 챙기는 입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찌 그리 처연하고 처량맞고 아린 것인지 그 시간들이 절절하게 남겨지는 아이스링크 같은 무대의 쓰임에 감탄과 감동을 잔뜩 안고 있는 관객이 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이 되고 다시 미군정통치 시대를 겪고 다시 민족상쟁의 6.25를 겪으며 제주 4.3 사건까지 쉴틈 없는 숨 가쁜 역사의 소용돌이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열심히 열창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푹 빠졌다.
최대치와 윤여옥의 위안부 시절의 아릿한 사랑부터 역사의 엇갈림 속에 등장하는 장하림의 맹목적인 사랑까지 충분히 전달되는 무대 위 열정에 만족을 하게 되었다.
무대 위 장치를 디지털로 활용해서 무대의 진행을 설명해 주고 화려한 무대의 몫을 해내고 무대 옆 공간의 계단장치를 통해 입체적인 무대사용을 하니 시야도 답답하지 않고 좋았다. 물론 넘버마다의 완벽함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여옥이와 대치의 아련함과 장하림의 역할이 잘 버무려진 무대였다. 장하림 역할을 맡은 최대철 배우의 열연은 감동스러웠고 아쉽지만 그의 열창뒤에만 진심 어린 박수를 준비할 수 있었으니 여옥과 대치 역할의 배우는 성량도 아쉽고 표현력도 경직된 느낌이라 최상의 열창은 아니었고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7시 30분부터 10시 30분 정도까지 충분히 채워진 '여명의 눈동자'의 추억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제작 비용의 압박으로 괜스레 여명 숙취음료 스폰이라도 받아야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다독이게 되었고 고이 냉장고에 정리하는 내 모습은 공연 보기 전 잔뜩 성난 관객은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결론으로 안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