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을 좋아했었네

by 리단쓰

예기치 않은 나의 성찰의 자락이 펄럭였다.

'눈부신 안부' 독서모임의 이런저런 발제 중에 주인공처럼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소식이 궁금해져서 죽기 전 만나고픈 추억 속 누군가에 대한 토로가 있었다. 궁금해도 그냥 묻어두고 싶은 시간이 있기도 하고 한번 즈음 과거와 맞닿은 현재의 시간에서 만나고픈 누군가를 소환하는 시간을 펼쳤다.


아하! 있었다. 나에게도 고등학생시절의 어떤 아이가 떠오르고 이제 60대의 시간에 그 아이, 아니 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그 아이는 감수성 가득 울퉁불퉁 마음속 수다를 나눈 대전에 사는 동갑내기 남학생이었다. 그것도 내 스스로 선택한 펜팔친구였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추억의 잡지에 맨 뒷장 펜팔코너가 있었던 시절이었고 난 지역과 이름등 마음에 드는 한 명을 정해서 편지를 보내는 열띤 여고시절이었다. ㅡ지금 생각해 보니 난 다른 의미로 놀았던 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편지 친구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직접 대면하는 이성교제는 너무 버거웠고 편지 속 대화로 이성 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깜찍한 발상을 했던 나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보통 그 당시에 펜팔로 소식을 나누고 사진도 교환하고 궁금해지면 대면으로 진도를 나가는 경우도 있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니 여고시절에 나의 감정의 풍랑은 은근히 일렁였고 겁쟁이 회피 성향은 안전장치로 비대면 교제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서 웃음이 번진다.


그 아이와 학교생활과 형제자매 부모님 이야기도 나누고 특히 문학이야기는 겹겹이 똥폼으로 무장된 수다도 많이 나눈 기억이 났다.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져서 헌책방 가서 마음을 끄는 시집을 샀다며 설정샷의 수다도 보내곤 했다. 덕분에 꾸역꾸역 시집도 읽고 느낌도 보내며 나의 필력에 확실히 보탬을 받은 시간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호감과 궁금한 게 생기며 가장 잘 나온 증명사진도 교환했던 기억에 웃음이 그칠 수가 없다. 고등학교 1학년때 겨울방학 때부터 펜팔로 나누고 아마 대학에 합격 후 만나자며 자연스럽게 공부핑계로 정리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에피소드는 펜팔로 완결되지 않았다. 대학 입학 후 미팅에서 그 아이를 만난 것이었다. 한 테이블에서 쪼르륵 앉아서 시작된 미팅에서 우리는 파트너는 되지 않았고 각자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다가 난 미팅 참가자들이 대전의 한 고등학교 동문들인걸 알았고 순간 펜팔했던 친구와 같은 학교라서 신기했다. 그리고 불쑥 그 친구 이름을 말하며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그때 저쪽 끝 자리 한 남자가 일어나서 아는 체를 하였다. 얼결에 반가운 듯 인사만 나누었고 각자 파트너랑 자리를 옮겼기에 무슨 정신으로 미팅을 마쳤는지 기억이 없다. 그리고 모두 파하면서 한번 더 반가웠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게 끝이라니 우린 서로에게 몰입할 찡함을 못 찾은 것일까?

그 친구 입장은 모르겠고 나는 신기해서 건너 건너 알겠구나 싶어서 말했을 테고 그 자리에 그 친구가 있을 줄 상상도 못 하고 대면식을 치르니 너무 놀랐다. 더구나 대학생 되었다고 신나서 뽀글이 파마한 지 얼마 안 된 내 모습이라니 민망했다. 가장 이쁘게 나온 단발머리 새침한 증명사진 속 나는 어디 갔을까?


암튼 이제와 돌이켜보니 1982년 4월인가의 추억이고 난 너무 어리숙했다. 쿨하게 미팅 끝나고 지난 이야기 나눌 법도 하건만 편지로 미주알고주알 수다 떤 내 모습과의 괴리가 신경 쓰였을까? 미팅자리에서 먼저 찾은 내 모습이 부끄러운 건가? 그냥 흐려진 인연이 되었다. 그날 내가 그 아이와 파트너로 정해졌다면 혹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날의 기억은 괜스레 나머지 미팅 참가한 멤버들이 좋아하기보다 싸한 분위기로 기억되어서 민망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그때 왜 그리 흐지부지 맺음 못한 만남이었나 아쉽기도 하였다.


오늘 독서모임에서 추억 한 자락 수다를 나누면서 지금쯤 어찌 늙어가나 궁금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혹시 나 같은 추억이 있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검색하니 세상에나 동시대 추억거리가 있었다. 어느 아재가 나처럼 리더스 다이제스트 펜팔란에서 만든 추억 한 자락을 블로그에 적은 글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의외의 시간의 소환으로 언젠가 또 떠올릴 날이 기다려줄까?

펜팔 친구야! 잘 늙어가다 언젠가 노인정에서 만나면 그때는 허심탄회하게 우리의 10대 그날들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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