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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싹아지는 나였나?

by sandra

'왕싹아지는 나였나?' 하는 물음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뒤척이다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글로

정리해 본다

목요일 오후 서초나비코치에서 2차 코칭 실습이 고, 교수님 한분과 세명의 코치가 한 조를 이룬다.

다른 팀은 커피숍에서도 만나고 전화로도 소통하며 계획을 조율한다는데 우리 팀은 유난히 조용하다.

1차보다는 조금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망설이다가 "통화 가능 할까요?"라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B코치는, 준비는 했는데 조심스러워 연락을 못했다며 미안해한다.

큰 줄기는 교수님 예문을 참고로 이런저런 방식으로 스토리를 바꿔 짧게 정리하고 남은 부분은 내일 전화통화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A코치는 교수님의 예문은 너무 길으니 GPT로 만들어 보내겠단다

'와! 역시 Mz 세대는 틀리는구나!'

얼마 후 GTP로 만든 2개의 자료가 ㅋㅌ에 떴다

"좋네요. 수고하셨어요. 두 자료 중 A코치는 어느 걸 선택하시겠어요?"

"전 2번으로 하겠습니다."

다음날 예기치 못한 변동이 생겼다. B코치로부터 감기 증상으로 인해 코칭실습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B코치와 할 자료를 모두 마친 상태였는데...

황당한 마음에 A코치에게 ㅋㅌ을 보냈다.

"B코치가 감기가 들어 불참한다는 소식과 B코치 분을 교수님께서 주신 예문 60문제를 40 정도로 줄여 준비하면 좋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GPT로 진행하면 깔끔할 것 같습니다."

"그럼 30문항으로 줄여서 맞춰보면 어떨까요?"

"링크 안 보셨죠? 다시 만들어 볼까요?"

"답변할 내용을 조금 더 다듬으면 끝날 것 같은데 너무 힘들게 하시는 것 같네요."

ㅋㅌ으로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해 난 준비가 대충 마무리된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GPT로 하는 걸로 끝났다.

수님이 코칭 프로세스를 기초로 만들어 주신 예문을, 줄이고 스토리만 바꾸면 좋을 텐데...

내 나름 예의를 갖추었는데 , 자존심이 서서히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시작한 일인데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다음 날 나의 고객 편을 꼼꼼히 정리해 전화로 또박또박 설명했다.

"좋네요"

"그럼 이대로 진행할까요?"

"네"

"그럼 코치님 고객 편을 이야기할까요?"

지우고 고쳐쓰기를 반복하다 A코치 혼자 마무리하기로 하고 끝냈다.

A코치가 직접 GPT로 만든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왜 똑같은 답변을 번복하는지 다소 답답함이 느껴졌다.

"지금 까지 정리한 거 제 ㅋㅌ으로 넣어 주실 수 있어요?"

"난 노트에 작성해서 ㅋㅌ으로 보내기 힘든데요"

"그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세요"

"그럼 제 고객분 보낼게요"

"제 고객분도 보내 주세요."

"그 부분은 내가 포인트만 메모식으로 작성해서 봐도 모를 거예요."

"그래도 보내 주세요"

"혹시 지금 나와 통화하면서 메모 안 했어요?"

"네"

예상 밖의 대답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순간 혼란스러웠다.

"정리해서 보낼게요. 시간 좀 걸릴 거예요."

'이건 무슨 시추레이션!!'

메모한 것에 기억을 더듬어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1시간에 걸쳐 수정해 사진을 찍어 보냈다.

문을 열고 응접실로 나가며 "나이도 내 절반 밖에 안 되는 게 완~전 왕 싹아지네!"

남편이 눈이 둥그레져 나를 쳐다보며 "여자가 무 슨 말이 그렇게 거칠어?"

"내가 그랬나? 스트레스 좀 받아서요"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 한편을 떠도는 생각들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문제는 내 역량 부족일까 , MZ세대와의 간극 때문일까? 생각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5년 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문화적 충격, 언어의 간극으로 힘들었던 때가 떠 올랐다.

그때의 혼란에서 이제야 겨우 벗어난 듯했는데 또다시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마주하며 휘청거리는 나를 발견하니 눈물이 났다.

몸도 마음도 잠들지 못한 채 날이 밝아 왔다.


다음날 12시에 만나 나의 고객분은 완성이 됐으니 A코치 고객분을 먼저 연습하기 시작했다.

"고객님의 밝은 옷차림 덕분에 공간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네요'

"전 이 문장을 빼고 싶어요"

"난 이 문장이 좋은데요"

"나를 칭찬하는 거 같아 빼고 싶어요."

" 난 공간까지 환해진다는 분위기에 포인트를 줬고 고객과의 유대관계에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썼어요."

" 이 문장은 닫힌 질문이 되니 빼고 싶어요"

이게 닫힌 질문인가? 생각 사이에 간극이 느껴진다.

"오케이"

"좋아요""오케이"로 바뀌어 가며 그 문장을 빼기로 했다.

스멀스멀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올라온다.

A코치의 고객 편이 자꾸 꼬이며 질문은 틀린데, 똑같은 대답이 반복된다고 하니 질문을 처음부터 바꾸자고 한다.

"본 코칭 실습시간이 30분도 안 남았어요~"

"어제 내가 보내준 사진글 안 봤어요? 17번에 빨간색으로 별표도 했는데"

"사진 보내셨어요?"

"두 사람 분 모두 보내 달라고 했잖아요"

"카톡 확인해 볼게요. 어머 마지막에 있는 사진을 놓쳤네요."

그 순간 끓고 있던 용암이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건의하면 GPT로 한다고 하고, 한편은 내가 작성한 것으로 하자고 하니, 보지도 않고 GPT로 해야 깔끔하다고 해서 내가 굳이 말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나와 30분간 통화하면서 메모도 안 하고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요청이 상식적인 일인가요?

나한테 너무 무례하고 예의가 없는 게 아니에요?

" 처음부터 각자 알아서 하자고 했으면 괜한 기대는 안 했잖아요"

A코치가 부탁해 1시간에 걸쳐 정리하고 필사해서 보낸걸 안 읽어 봤다니, 정말 기막히고 이해가 안 되네요."

"죄송해요"

나는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야단을 치고 있었다.

옆을 보니 교수님과 조교님이 들어오고 계셨고 , 그 순간 나는 젊은 사람에게 화내는 너그러움 하나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본 실습 전, 5분 정도 각자의 대화가 있었고, 그 5분이 내 가슴에 타오르던 용암을 덮어 버렸다.

'아! 예의도 싹아지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나와 많이 다른 성향을 가진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교수님의 차분한 말씀에 힘입어 마음을 가다듬으며 어렵사리 실습을 끝냈다

찹찹한 마음을 안고 생각에 잠긴 채, 30도가 넘는 날씨에 뜨거운 햇빛도 의식하지 못한 채 40분을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배우면 뭐 하나? 실천에 옮겨야지...

코치수업에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는 건 중요한 부분인데 난 그것을 놓쳤다'

'A코치가 예의 없는 왕싹아지가 아니라 성향판단을 못하고 상대방에게 화내고 혼낸 내가 왕싹아지가 아닐까?'

성향 파악을 못한 건, 배움의 과정으로 남기면 된다.

결국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상대에게 화내고 야단친 게 더 힘들고 불편하다.

젊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에 짐하나가 털컥 올라앉는다.

매듭진 끈을 느슨히 풀어낼 때 마음이 흐른다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만나면 꽃 한 송이 안겨주며 꼭 안아줘야겠다.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한 브런치 타임*

갓 구운 치즈빵과 진한 커피의 풍미가 일상의 여유로움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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