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마음속에 작은 설렘을 품고 손꼽아 기다렸던 날, 오늘 오후, 마침내 손녀들이 도착하는 일요일이다.
남편과 나는 손에 예쁜 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들뜬 마음으로 공항에 손녀들을 마중 나갔다.
손녀들의 모습이 보이자 꽃다발을 안겨 주며 그리움과 기쁨 마음으로 꼭 끌어안았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아이들, 피곤함도 잊은 채 꽃보다 더 예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2년 전 미국에 가서 만났던 아이들이 그 사이 부쩍 자라난 모습에, 문득 세월은 흐름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실감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창밖으로 펼쳐지는 서울 풍경을 조금씩 설명해 주었다.
"저 옆에 보이는 게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이야,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 할머니가 엄청 사랑하는 한강"
"네, 예쁘네요~~"
"저기 보이는 큰 돔 건물이 한국 국회 의사당이야, 미국에 워싱턴 D.C에 있는 Capitol Building 같은 곳이야"
"네"
그리고 조금 더 달리다, "저기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높은 건물 보이지? 저건 63 빌딩, 저게 옛날엔 서울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어, 황금빛 유리로 반짝여서 어릴 땐 '꿈에 빌딩'이라고도 했어"
큰아이 니콜은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직 한국말이 서툰 작은아이 랄라는 피곤한지 자고 있었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아이들에 기억 어딘가에 이 순간이 작게나마 남길 바랐다.
요즘 우리 집은 밝고 분주하며 , 하루하루가 선물처럼 쌓여간다.
예쁜 손녀들의 존재만으로도 집안에 활기가 돈다.
서로 떨어져 지냈던 시간들이 길었음에도 , 이렇게 오롯이 모여 웃으며 이어주는 걸 보니 가족이라는 건 참 따듯하고 아름답다.
"할머니 한국은 밤늦게 다녀도 위험하지 않아요?"
"그럼, 한국은 괜찮아, 친구들 만나서 졸업여행 추억 많이 만들어~"
"참 신기하네요~"
그 후 큰손녀 니콜은 대학에 합격하여, 함께 온 친구들과 졸업여행의 설렘을 품고 아침 일찍 나가 하루를 가득 채우고 밤늦게 돌아온다.
170cm가 넘는 키에 싱그러움과 자유로움을 입은 니콜이 옷을 차려입고 나갈 때는 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세대를 잇는 감각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엄마의 미적 감각이 자연스레 스며 있는 듯한 모습에, 바쁜 발걸음조차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하루는 니콜이 "할머니, 할머니가 옆에 있으면, 어느 땐 엄마가 옆에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래요?"
"네 엄마는 할머니 딸이니까~~ㅎㅎ"
우리 부부는 작은애 랄라 챙기고 큰애 니콜 스케줄에 맞춰 데려다주고 데려오다 보면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함께 온 친구들이 집 가까운 테헤란로에 머물고 있어 마음이 놓이고 움직이기 한결 수월하다.
딸에게 수시로 아이들 근황을 사진 찍어 보내며, 엄마, 아빠가 이렇게 잘 챙기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사인도 보낸다.
랄라는 밤늦게까지 언니를 기다리다, 언니가 돌아오면 달려가 끌어안고 다시 만난 기쁨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사춘기 랄라는 언어의 벽과 낯선 환경 속에서 말보다 마음이 먼저 막히는 순간이 많은 듯하다.
또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언니를 더 의지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볼 때마다 , 마음 한편이 아릿해진다.
니콜이 집에 돌아오면 랄라와 함께 미국에 있는 엄마와 화상 통화를 시작한다.
매일 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한 시간이 넘도록 조잘조잘 거리며 나누는 시간은, 웃음으로 가득 찬 작은 축제 같다.
한 시간 넘게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하나하나 답해주며 다음 날 스케줄도 묻고 꼼꼼히 챙겨주고 함께 웃고 있는 딸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든든하다.
"엄마, 나 잘하고 있어, 스케줄도 잘 챙기고 있으니까 피곤하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럼, 누구 딸인데~ 그래도 엄마는 이것저것 찾아서 네 스케줄 보충해 주는 게 재미있으니 걱정하지 마~"
서로를 챙겨주는 두 모녀의 대화는 먼 거리도 잊게 할 만큼 따뜻하고 정겹고 사랑스럽다.
엄마인 내 마음 한편에,
딸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멀리 미국에 떨어져 곁에 없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가슴에 딸을 향한 그리움이 조용히 스며들며 내 마음을 뭉클하게 적시며 번져간다.
내 딸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내 마음이 더 깊어지는 건 손녀를 향한 나의 사랑을 더해 내 딸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그 아이들을 통해 딸의 삶을 보듬으며 사랑까지 함께 품어 본다.
사랑은 그렇게 혈연을 넘어 마음의 결로 이어지는 듯하다
손녀들이 한국에 온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됐다
오늘 니콜은 일주일간 친구들과 일본으로 졸업여행을 떠났고 랄라는 친가에 갔다.
갑자기 조용하게 느껴지는 집 안, 문득 찾아온 적막함 속에 허전한 마음을 안고,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 본다
* 한 송이 딸기꽃과 함께 오늘도 마음을 담아 피어낸 과일 한 접시에,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