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한국으로 졸업여행 온 언니를 따라 함께 온 랄라,
언니친구 들과 함께 거리 여기저기를 다니며 구경하는 것도, 쇼핑하는 것도 어린 랄라는 그리 즐거워하지 않아 한다.
오늘은 집에서 책 읽고 있겠다는 랄라의 말에, 언니니콜은 랄라가 마음에 걸렸는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넨다.
친구들과 일본으로 졸업여행 갔다 돌아가면 그때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많이 다니자며 랄라를 다독이고 나간다.
그 한 마디에는 언니의 배려와 동생을 향한 세심한 사랑이 함께 스며 있었다
조잘조잘 말을 잘하는 랄라는 언니가 옆에 없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언어의 벽 앞에서 마음을 더 닫는 듯하다.
그 작은 마음이 더 머뭇거리고 움추러드는 듯해 안타깝다
랄라는 한글을 제법 읽고 쓰지만, 말을 잇는 게 서툴러 머뭇머뭇한다.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문이 더 트이지 않을까...
한국말이 서툰 랄라를 바라보며
대화란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다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종일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은가 싶으면 이상하게 , 그만큼 작은 노트를 펼치고 무언가를 쓰고 지우고 한다
2년 전엔 돋보기 들고 감정사처럼 돌을 들여다보더니 지금은 또 다른 결의 세상을 조용히 탐색하는 듯하다.
하루는 은행에 들러 니콜 일본 여행에 필요한 엔화를 준비하고 뮬란에 들러 남편이 좋아하는 빵을 사고,
아이들도 이것저것 고르며 즐거워했다
. 차 안에서 니콜이 " 할머니 빵하나가 10불, 좀 비싸네요? 그런데 맛있을 것 같아요."
"좀 비싼데 맛있어, 지금 점심 먹으러 가는 길이니 빵은 집에 가서 먹자"
"네"
맛있는 점심을 먼저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그것이 나 혼자만의 배려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들은 , 자신들이 고른 빵을 바로 맛보고 싶다는 뜻이었을 텐데, 그냥 먹으라고 할걸...
눈치 없이 이러한 사소한 어긋남이 세대 간의 틈인 듯, 생활에 간극인 듯 해 뒤늦게 아쉬움이 밀려온다.
오랜만에 함께여서 그럴까 사소한 일조차 마음에 남는다. 크고 작은 일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할머니 마음일까?
또, 다를 거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함께 지내보니 식생활의 차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크게 다가온다.
고기를 좋아하는 랄라는 밥 대신 면을 찾고 , 고기는 스테이크나 숯불 바비큐를 먹어야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니콜은 우리와 웬만하면 함께 먹는데 랄라의 그 미묘한 입맛은 항상 뭔가를 따로 준비해 줘야 한다.
할머니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 주는 음식이지만, 어쩐지 엄마가 해주는 음식과는 결이 달라서 인지 랄라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는 듯하다.
할머니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엄마의 다정하고 익숙한 정서가 깔린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듯하다.
딸은 우리가 미국에 머무를 때면 늘 그림처럼 예쁘게 식탁을 차려놓는다.
엄마, 아빠가 한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브라질 음식을, 아이들 돌보느라 분주하고 피곤할 텐데도
정성스레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남편, 아이들에게도 음식을 각자에 입맛에 맞추고, 예쁜 그릇에 정성껏 담아 그림처럼 담아낸다.
아이들도 학교급식을 안 먹이고 도시락에 간식까지 싸 보낸다. 학교급식은 영양도 부족하고 살만 찐다고...
그리고 주말엔 대충 주방문을 닫고, 외식, 또는 각자 해결하며 쉰다고 한다
"얘 좀 대충 하고 살아라, 너무 피곤하게 살지 말고~~"
"난 엄마한테 배운 데로 사는 거예요~~.ㅎㅎ"
"얘, 그래도 나는 너처럼 피곤하게 살지는 않는다"
"그건 엄마 생각이고, 난 엄마의 예쁜 것 좋아하는 피곤한 스타일과 아빠의 꼼꼼한 피곤한 스타일을 모두 닮아서요. ㅎㅎ"
딸에 부지런함과 끝없는 배려가 늘 대견하면서도, 때때로 마음 한편에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딸이 조금은 내려놓고 덜 힘들게 살길 엄마는 조용히 바랄 뿐이다.
오늘 백화점에 들러 점심을 먹고 라운지에 앉아 잠시 쉬는 시간에도 랄라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그 작은 손으로 무언가를 쓴다.
뭘 저렇게 쓰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니콜, 랄라는 매일 뭘 저렇게 쓰니?"
"할머니, 랄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이야기를 쓰는 게 뭐야?"
"할머니처럼 글을 쓰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이 멈췄다.
백화점 라운지 안, 사람들 틈 속에서도 랄라는 스스로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 듯하다.
집에서는 "Creative writing for Dummies"를 읽는다.
궁금한 마음에 책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책은 성인 초보자 용으로 문장이 평이하다.
스토리의 기본요소, 장르와 스타일 찾기, 아이디어 찾기와 창의성 키우기, 글쓰기의 구조 만들기, 글 다듬기와 편집, 글쓰기 커뮤니티와 발표, 이야기 쓰는 방법부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까지 알려주는 글 쓰기 입문서다"
와! 대단하다
' 나는 번역판을 사서 읽어 볼까?"
하지만 번역체 문장이 다소 딱딱할 수 있고, 에세이처럼 감성 있는 글쓰기에는 거리감이 이 있다고 한다.
"랄라 이 책은 누가 사 줬어?
"엄마"
"누가 골랐어?
"나요"
"재미있어?"
"네"
"너무 어렵지 않아?
뭐가 어렵냐는 표정인지, 못 알아듣는 건지? 눈이 동그레 져 "아니요"
랄라는 그 책을 가방에 넣어 한국까지 가져왔다.
책장을 접는 것도 싫어하는 아이인데 책 사이사이 메모 스티커가 붙어 있고 책에 손 때가 묻어 있었다.
열두 살 그 나이에 조용히 앉아 아이패드보고 책 읽고 글 쓰고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니,
저 작은 아이의 머릿속에 얼마나 넓은 세계가 숨어 있기에, 캐릭터를 만들어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열두 살의 마음속에는 어떤 상상들이 자라고 있는 걸까?
엄마와 통화하면 한 없이 조잘거리는 어린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언어의 장벽에 부딪쳐 대화도 잘 안되고,
요즈음 그 답답함이 더 글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랄라가 글을 완성하면 나는 그 글을 꼭 읽어보고 싶다. 아직 서툴고 어색할지라도 글을 통해 랄라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 무엇을 품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내겐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랄라의 세계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할머니의 사랑인듯하다
친구들과 일본으로 졸업여행을 떠난 니콜이 돌아왔다.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얼싸안고 좋아 어쩔 줄 몰라한다.
차 안에서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조잘조잘 쏟아내며 웃고 떠들기를 끊이질 않는다.
그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 순간이 두 아이들에게 얼마나 밝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까?'
한국 여행의 추억이 오래도록 아이들의 삶을 단단히 지탱해 주는 밝고 환한 빛이 되길 기도한다,
어제는 니콜이 랄라를 데리고 나가 점심도 함께 먹고, 일본에서 사 온 선물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랄라 옷이며 액세서리를 한 아름 사 갖고 들어 왔다.
할머니도 보시라며 랄라에게 하나하나 입혀 보고 정성껏 코디를 하느라 분주하다.
도수 없는 패션 안경도 씌워보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 모습에서 동생을 챙기려는 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마음 한편이 흐뭇하다
이렇게 소소한 순간들이 아이들에겐 즐거운 추억이 되고 나에겐 남아있는 삶을 기쁘게 할 기억이 될 것이다.
"할머니, 랄라는 옷에 관심이 없어요. 랄라 친구들은 안 그런데"
"난 옷보다 책이 더 좋아" 랄라가 말한다.
오늘은 가방을 메고 아이패드가방을 들고 둘이 똑같은 패션안경을 쓰고 나간다.
"할머니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강남대로 뒤편에 예쁜 카페가 있는데 가서 책 읽고 글 쓰고 올게요"
"집에 올 때 교보문고도 들러 올 거예요"
도서관도 아니고 카페에 책 읽고, 글 쓰러?
요즘 카페에 노트북 펴 놓고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꽤나 많더니 나의 손녀들도.....
*딸기꽃처럼 예쁜 손녀들 얼굴, 언제나 달콤하고 고운 빛깔 과일처럼 아이들 마음에도 늘 기쁨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