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꽃다발을 가슴에 품고 설레는 마음으로 나갔던 인천공항, 그때의 공항은 환희로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오늘은 떠나보내야 하는 이별의 아쉬움과 애틋함에 눈시울을 적시며, 수많은 상념과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끌어안고 공항을 나간다.
손녀들과 나는 나이에 간극을 넘어 세대와 언어, 살아온 문화, 식습관까지 다른 세계에 살아왔다.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눈이 동그레 졌던 아이들, 더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집에 돌아오면 에어컨 밑에 누워있던 랄라,
할머니가 만들어준 치킨이 미국치킨보다 더 맛있다고 먹던 아이들, 포도를 잘 먹던 랄라, 복숭아를 잘 먹던 니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경복궁에 가서는 좋아라 하더니 옷이 답답하고 덥다고 짜증 내던 아이들,
무더위에, 에어컨 바람 알레지비염이 생겨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시도 때도 없이 꿀물 타서 먹였던 니콜,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무더위 속에서 계획에 따라 매일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아이들이 지친 기색이다.
이제는 엄마, 아빠가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말보다 얼굴에서 스며 나온다.
2년 만에 마주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짧은 만남, 낯선 한국에서 과연 잘 지내다 가는지, 아쉬움이 오랫동안 진하게 남는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
"니콜아 피곤한데 잠시 눈 좀 붙여라"
"눈을 어디에 붙여요?"
하고 되묻는다. 우리 부부는 웃음이 나왔다.
"피곤하니까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쉬거나 자라는 뜻이야"
언어의 틈과 세월의 결이 스치는 순간, 이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지 말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은 적은 없었을까 하는 걱정이 불현듯 스며들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허망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이들을 꼭 끌어안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한 채, 그들을 탑승구 너머로 보냈다.
이별은 늘 이렇게 가슴 저리고 아프게 하며, 그리움은 남는 사람의 몫이 되는 듯하다.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흰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가을처럼 푸르고 맑은 기운 속에 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그러나 시선을 옮겨 저 멀리 다른 쪽 하늘을 보니 내 마음을 비추기라도 하듯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 차 비를 쏟고 있는 듯하다.
20여 년을 매년, 그리고 코로나가 잦아든 뒤에는 두 번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과 딸 집을 오가며 , 친구도 만나면서 머물렀다.
그곳에서 식구들과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식구들과 여행도 다니며 낯선 곳에서 함께 걷고, 보고, 사진도 찍으며 소중한 추억도 차곡차곡 쌓아갔다.
2년 전엔 손녀딸, 친구부부와 함께 Yellowston으로 여행을 떠났다.
함께였기에 여정은 더 든든하고 즐거웠다.
니콜을 향한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해졌고, 큰언니처럼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친구의 사랑은 나를 감동시켰다.
가족도 친구도 함께한 시간, 함께하는 대화가 쌓일수록 정이 더 깊어지고, 마음에 거리가 줄어드는 듯하다.
그래도 요즈음은 화상통화를 통해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처럼 지켜볼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나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연스레 다가오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며 문명의 손길이 만들어준 작은 화면이
우리의 마음까지 잇고 있다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꿈결같이 기쁘고 감사한 날들을 보내고 돌아올 땐, 기쁨은 서서히 이별이라는 아픔으로 뒤엉켜 버린다.
공항에서 딸과 나는 꼭 끌어안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한없이 눈물만 흘린다.
그 눈물 속에는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과 자주 볼 수 없을 이별이 남긴 아린 아픔이 겹겹이 스며 있었다.
만남의 기쁨 뒤에 찾아오는 이별이 더욱 깊이 아프고 가슴을 울렸다.
오래전. 부모님들이 연세가 드시면서부터 나는 해마다 연말이면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뵙고 떠날 때면, 친정아버지의 아쉬워하시는 눈빛과 시어머님의 눈물 어린 얼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내가 내년에 와도 저분들을 다시 뵐 수 있을까?'
삶의 유한함이 주는 뼈아픈 진실 앞에 돌아서는 발길은 언제나 무겁고 눈물이 났다.
그 후 흐르는 세월은 결국 부모님들을 한 분 한 분 저 세상으로 모셔 갔다.
남은 건 깊은 그리움뿐이고, 사랑은 떠나신 뒤에야 더 깊게 다가온다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그 필연의 순환 속에서 삶이 내게 던지는 물음을 다시 깊게 새겨본다.
*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손녀들의 고운 자태가 고궁의 정취와 어우러져, 시간마저 잠시 머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