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라질 feijoada(훼이조아다)와 이방인의 삶

흑인 노예의 삶에서 비롯된 feijoada

by sandra

두바이를 경유해 장장 30시간에 걸친 긴 비행 끝에 드디어 브라질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브라질은 나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30여 년 동안 나에 열정의 시간이 스며든, 지나온 삶이 머물던 또 하나의 고향이다.

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한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의 35도에서 38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 속을 헤치고 나온 터라 , 몸은 피곤했지만 상파울루의 기온 20도 안팎의 서늘한 공기는 살결을 스쳐가는 바람마저 신선하고 쾌적하게 느껴졌다.

입국장을 나오니 에미레이트항공에서, 정장을 한 멋진 기사가 짐을 받아 호텔까지 편안하게 안내해 주었다

기사의 태도에서 브라질이라는 땅이 품고 있는 특유의 느긋하고 따뜻한 정서적 온도가 느껴졌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잠깐 짐을 풀고, 지인과 저녁식사을 함께 하며 브라질 소식도 전해 듣고 마침 내일이 feijoda(훼이조아다)를 하는 날이니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브라질이라는 시간의 결에 다시 젖어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feijoada(훼이조아다)는 수요일, 토요일에 먹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마치 작은 축제처럼 따뜻한 풍경이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 아침, 창문을 여니 기온은 9도에 바람까지 불어와 생각보다 훨씬 쌀쌀했다.

'두꺼운 옷을 더 많이 챙겨 올걸 ' 아쉬움이 밀려왔다.'

매번 브라질 계절을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몸으로 와닿기까지는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와야 느낀다.

사람들은 흔히 브라질을 뜨거운 태양과 카니발축제의 나라로만 기억하지만, 지금 이곳은 한국의 정반대 되는 겨울이다.




수요일의 햇살아래, 10여 명의 지인들이 반갑게 한자리에 모여 진한 feijoada(훼이조아다)를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정겹게 물었다.

브라질에서 만나는 한국 지인들은 낯선 환경 속에서 같은 뿌리를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말이 필요 없는 정겨운 사람들이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익숙한 언어, feijoada(훼이조아다)의 깊은 향, 오랜 시간 끓여낸 그 풍미 속에는 나의 지난 세월이 모두 녹아 있는 듯했다

feijosda는 단순한 브라질 전통 요리가 아니다

17세기, 설탕 농장에서 일하던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들이 주인들이 먹고 남긴 돼지고기 (귀, 코, 꼬리, 족발, 갈비, 살코기) 등을 소금에 절여(묻어) 저장했다.

필요할 때 2~3일 물에 소금기를 제거한 후 검은콩, 마늘, 양파, 월계수잎, 오렌지껍질, 향신료를 넣어 끓인,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깊고 풍미 있는 음식이다.

쌀밥, 파파야고(만디오카가루를 볶은 것), 오렌지슬라이스, 케일볶음을 곁들여 먹는다.

비천한 재료로 시작되었지만 feijoada(훼이조아다)엔 삶을 견디고 지켜온 노예들의 인내와 지혜가 담겨있었고

이렇게 이어온 음식이 이제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전통국민 요리가 되었다.

요즘 일반가정에서나 식당에서는 코, 귀, 꼬리는 생략하고 살코기, 갈비, 족발, 링구이사(돼지고기로 만든 브라질 소시지) 위주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전통을 고수하는 식당에서는 여전히 다양한 부위를 넣어 진하게 끓인다고 한다.

먼 옛날 고향을 그리워했을 아프리카계 노예들의 눈물과 인내가, 타국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온 나의 이민생활과 겹쳐 보이며

feijoda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미가 가슴을 아릿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브라질은 언제나, 내 삶의 긴 한 조각이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내 깊숙한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흑인 노예들의 인내와 지혜의 삶에서 시작된 뚝배기에 담겨있는 브라질 전통 국민요리 feijoada*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이가 들었기에 더 잘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