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to ~you~"
"Thank you!"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남편과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를 나눈 뒤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작은 설렘이 느껴진다.
전 날 정갈히 준비해 놓은 재료로 정성을 들여 오늘의 음식을 만들기 시작해 본다.
굴을 넣은 미역국 향기가 부엌에 가득했고, 고사리나물, 취나물등 나물을 묻히니 참기름 향이 코를 스쳤다.
버섯을 다져 오징어, 새우를 넣어 전을 부치니 기름 냄새에 잔칫집 분위기가 났다.
이것저것 예쁜 접시에 담아 상에 올리니 소박한 아침 생일상이 차려졌다.
근데 뭔가 빠진 것 같다.
"아차" 남편이 갈비찜을 좋아하는데, 내가 왜 갈비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이젠 내가 정말 할머니가 됐구나" 하며 아쉬워했지만 이미 늦은 일,
"할 수 없지 뭐, 다음에 해야지..."
식탁에 앉으며 다시 한번 "해피 버스데이 투~유"
"수고하셨어" 하며 남편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 하루가 남편에게 특별한 선물이 되길 바라며 , 앞으로도 건강하고 평온하게, 우리 둘만에 속도로 살아가길 기도한다.
점심땐 시형제들과 부모님이 계신 납골당에 들려 인사를 드리고, 부모님을 뵙고 나면 항상 들르는 장어집을 찾았다.
점심식사를 하며 정겨운 이야기가 이어졌고 준비한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며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신 축합니다." 하며 웃음꽃이 피어났다.
세월에 시간이,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어도 마음속 깊이 흐르는 혈육에 정, 끈끈하게 이어온 가족애에 ,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오늘도 즐거움으로 완성된 하루인 듯했다.
나이 들어 한국에 돌아와 따뜻하게 마음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든든하다.
형제들 간의 우애가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서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항상 기도한다.
저녁은 남편과 나, 두 사람만의 와인상을 준비해 본다.
"생크림에 치즈크림 넣어 휘핑해 주세요~~"
"참 피곤한 스타일이야, 또 뭘 하려고?" 하면서도 남편은 싫지 않은 표정이다.
나는 디저트로 먹기 위해 카스텔라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뿌리고 휘핑한 크림을 올려 정성 들여 티라미수도 만들었다.
커피와 함께하는 달콤하고 촉촉한 티라미수는 입안의 작은 축제다.
식탁에 훼이조아다( 브라질 전통 요리) , 치즈, 플레팅 한 과일을 올리니 두 사람만에 와인 테이블이 완성!
남편과 마주 앉아 와인 잔을 부딪히며 추억 나들이를 떠난다.
심 씨 집성촌 평창동의 음력 정월이면 , 구정차례상, 세배손님 대접, 정월 대보름, 시할아버님 생신, 남편생일등 행사가 많았던 이야기...
"시아버님 생신날 밤늦게 까지 손님을 치르고 다음날 큰 아비 낳다"
"아휴~, 옛날엔 아기 낳기 전까지 일을 했으니" 하시며 푸념하시던 시어머님 모습도 그리움이다.
남편의 돌잔치를 며칠 동안 하셨다며 돌날 신었던 귀여운 꽃신을 주셨던 시어머니, 잘 보관하고 있는데, 난 이 꽃신을 누구에게 줘야 잘 보관할지...
분지 속에 안겨 있는 산속 평창동, 눈이 내리면 눈꽃이 소복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들은 얼음 조각처럼 빛났고, 매서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눈가루가 춤을 추던 겨울, 추위가 힘을 잃어 가면 슬며시 겨울을 밀어내고 찾아오는 수채화 같은 봄...
시아버님, 어머님 생신은 , 온 대지가 다채로운 색과 생명력으로 뒤 덮이는 수채화 같은 봄, 음력 3월, 4월
생신 때면 봄에 따사로운 햇살이 앞뒷산을 가득 채우고, 진달래, 개나리등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자락 자락을
물들이고, 꼬리가 긴 반가운 까치도 한몫한다.
평창동에 봄은 마음까지 물들게 하는 화사한 꽃동산이었다.
생신 때면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해야 했고, 생신 다음날이 돼서야 잔치는 끝이 났다.
"어머니가 꽃을 참 좋아하셨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그리움이 묻어 있다.
꽃을 좋아하셨던 시어머니는 앞마당엔 꽃나무 뒷마당엔 과일나무를 기르셨다.
뒷마당 한편엔 큰 가마솥이 걸려 있었고, 봄이 되면 앵두나무에는 앵두가 방울방울, 배 나무에는 배가 조롱조롱, 능금나무에는 빨긋빨긋 애기사과가 달려 있었다.
"우리 집 납작 홍시는 참 달고 맛있었는데" 감나무를 추억하는 남편.
가을이면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달리고, 이층 베란다에서도 장대로 따야 하는 큰 감나무엔 가지가 늘어지게 감이 많이 달렸다.
손주들이 스스로 따서 먹는 기쁨을 누리도록 감나무의 손 닿는 가지는 빨갛게 익을 때까지 아이들을 위해 남겨 두셨다. 까치가 와서 먼저 먹을 때도 있지만...
뒷마당에 과일나무들은 손주들을 위해 준비하신 할머니의 선물이었다.
남편이 태어난 평창동은 산자락에 포근하게 기대듯 안겨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사 간 곳이 브라질이라며, 나이가 들어도 남편은 옛 평창동을 그리워한다.
지금은 없다며, 평창동에 있던, 껍질을 벗기면 물이 줄줄 흐르는 빨간 자두이야기, 여름엔 물을 막아 놓고 수영을 하고, 겨울에는 개울물이 얼어 썰매를 탄 이야기, 어머니 손을 잡고 명동에 짜장면 먹으러 다녔던 이야기...
어려서 어머니와 미도파백화점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는 남편.
남편이 어릴 적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명동 거리를 걷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결혼해 15년을 시부모님과 함께 평창동에서 지낸 세월은 남편의 추억 나들이에 부분 부분 따뜻한 공감으로 화답해 줄 수 있다.
남편은 서초동에 앉아 나와 포도주 잔을 부딪히면서도 마음은 온통 어릴 적 평창동으로 돌아가 있다.
옛날 평창동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남편의 은빛머리와, 세월이 켜켜이 그려 놓은 주름진 얼굴을 보니 아련한 연민이 스쳐간다.
휘핑하면서 상태를 잘 살펴, 믹서를 들어 올렸을 때 끝이 살짝 구부러지면서 뿔 같은 모양이 유지되면 휘핑 끝.
설명으로 어렵게 느껴지던 것도 직접 손을 움직여해 보면 감이 잡히고 익숙해진다
카스텔라에 커피가 스며들며 은은한 향이 배어들고, 빵이 촉촉해져 더욱 맛있게 된다.
휘핑된 크림을 두 번 나눠 올려야 하니, 처음부터 휘핑크림을 스푼으로 대충 반 갈라 두는 게 수월 하다.
나중에 양을 맞추느라 헷갈리지 않고, 크림을 고르게 올릴 수 있다.
스푼으로 술술 뿌리면 가루가 뭉칠 수 있고, 고운 체에 밭쳐서, 톡톡 뿌려주면 가루가 마치 눈처럼 예쁘게 내려앉는다.
정성껏 만든 티라미수 한 조각... 화이트, 다크 초콜릿으로 포인트를 더 했다.
마지막으로 고운 체에 내린 코코아 가루를 살포시 접시에 뿌렸다.
남편과 마주 앉아 즐기는 디저트 타임,
티라미수 위에 뿌린 코코아처럼 소소한 기쁨이 가슴에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