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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01. 2023

스티브를 기리며...

유럽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 다국적 기업과의 업무입니다. 여기서 다국적 기업이란 해외에 여러 사업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 개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수 국가의 다수의 담당자들을 접촉하는 경우 불필요한 시간이 소요되고 효율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저와 유럽 여러 국가 사업장들과의 소통채널을 영국 사업장의 스티브가 맡게 되었습니다 (Mr. Steve)


스티브는 40대 초반의 백인인데 이쁜 딸과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평범하게 사는 가장입니다.  외모가 평온하고 성격도 온순하여 소통채널 역할에는 적임자였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그 회사도 그에게 소통 역할을 부여했을 겁니다.  유럽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구 동구유럽권 사람들이 다소 터프합니다. 당시 폴란드, 헝가리 사업장들의 상대방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일방통행적 업무스타일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는데 스티브를 통한 업무진행을 한 후부터는 삐걱거리는 자전거가 기름을 칠한 후 씽씽 달리듯 업무가 원활해지더군요. 양쪽에 대한 귀가 열려있고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성격을 지닌 사람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며 그와의 업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스티브는 온순한 외모와 격과는 달리 상당한 Heavy smoker였으며 술도 좋아했습니다. 담배의 경우 종류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독해 보이는 시가 색깔과 비슷한 갈색의 담배를 즐겨 피었으며 술도 유럽식 폭탄주 (유럽 사람들도 맥주와 위스키를 동시에 마십니다)를 즐겨 마셨습니다. 회의 후 잠시 쉬는 시간에 담배를 끊은 저에게 "미스터 킴. 같이 담배 피우러 가자"라며 농담도 자주 했습니다. 이렇게 유흥을 즐기며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지기도 하고 중간에서 소통을 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브의 동료로부터 뜻밖의 비보를 들었습니다. 스티브가 미국 아틀랜타에 동료들과 출장을 갔는데 호텔 아침 식사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 봤더니 침대에서 숨을 거둔 채로 누워 있었다 합니다.  경찰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였습니다. 나이도 아직 젊고, 낙천적인 그가 왜 그렇게 세상을 떠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고 슬펴했습니다. 술 담배를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그에 의한 지병도 없었습니다. 결국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인한 피로누적 및 소통 역할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가장 설득력 있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스티브의 역할은 사업장들 간의 소통이었기에 수많은 해외 출장을 다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기장이나 스튜어디스등 전문 항공 종사자들도 한번 비행을 한 후 의무적으로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는 지상과 10 Km 정도 떨어진 상공에서의 체류자체가 인간의 생활리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다시 지면과 동화할 시간을 주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티브는 이틀에 한 번꼴로 출장이었고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기에 눈에 보이지 않게 피로와 신체 불균형이 축적되었을 것입니다. 이후로는 회사 차원에서 가급적이면 항공 출장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며칠 후 스티브의 장례식 초대 카드를 받았습니다. 카드에는 미망인 및 그 딸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들이 얼마나 황망하고 슬플까를 생각하니 그날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더군요. 유감스럽게도 장례식장이 제 거주지와 많이 떨어져 있고 저도 일정이 있어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선의에 의한 영향력이 있었던 친구라 장례식장에 많은 이들이 모여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함께 했다 합니다. 제가 스티브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약 한 달 전 영국 런던에서였습니다. 아주 청명한 가을 아침,  약속 장소로 선글라스를 쓰고 걸어오다 저를 발견하고는 특유의 귀여운 웃음을 지으며 "Hi. Mr. Kim "이라고 다정하게 불렀던 스티브 모습과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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