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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을 깬 싱가포르 출신 안젤린

by 오로라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키워야 할 인재라 생각하면 해외 순환 근무를 권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여러 나라에서 경험을 쌓게 하여 글로벌 인재로 육성, 회사의 든든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겠지요. 유럽의 글로벌 기업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 오신 분들 중에서는 중국계, 특히 여자분들이 많으며 이런 여자분들은 전반적으로 똑똑하고 기가 세서 딜을 할 때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스위스의 다국적 화학 기업과 비즈니스 기회가 있어 방문을 했는데 담당이 싱가포르 지사에서 근무하다 스위스 본사로 파견된 안젤린이라는 중국계 여자분이었습니다. 당시 30대 중반의 안젤린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는 물론, 전문적인 업무 지식, 순발력에 유머 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대화하다 보니 저의 부족함에 자괴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여자분은 김치 사랑이 대단했는데 특히 묵은지 김치찌개를 좋아하여 냉장고에 묵은 김치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럽인 남편이 냄새가 너무 난다고 자기 몰래 내다 버렸는데 이를 나중에 알고 그날 남편을 반 죽여 났다고 웃으면서 호탕하게 얘기하는데 그 여자분의 성격을 보면 빈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강하고 꼼꼼한 성격 때문에 딜이 쉽지는 않았지만 또한 현명한 분이었기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되 저희가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에서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이 여자분의 패턴을 알아 적정선까지 양보를 하며 거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제 서로 좀 알아갈 무렵 이분이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습니다. 아마 회사 차원에서 여러 부서에서 경험을 하게 하여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았습니다.


몇 년 후 어느 전시회에서 낯이 익은 힘차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보니 안젤린이 여러 사람들과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절 보더니 오랜 친구를 만난 듯이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던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해 주며 살갑게 대해 주더군요. 몇 년 만에 만났는데도 마치 어제 만났다 헤어진 친구처럼 대해주는 그분의 긍정에너지는 타고난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시간이 또 흘렀는데 어느 날 링크드인을 통해 친구 신청이 들어와 다시 서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다국적 기업의 스위스 본사 중역으로 승진했더군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안젤린은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는데 여성에 대한 유리천장, 동양인이라는 한계를 깨고 유럽 본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일견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아마 그분은 적어도 부사장까지 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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