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래와 같이 시작하는 부고 메시지가 Linkdin에 떴습니다. 슬라트라는 프랑스계 네덜란드분인데 그분의 따님이 부고메시지를 올렸더군요.
이분과의 인연은 약 15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분은 조만간 퇴임을 앞두신 다국적 기업의 구매총괄 중역이었습니다. 저보다 상당히 연세가 있으셔서 다소 불편했는데 사실 나이보다는 그분의 강한 성향이 저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이분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기업들의 구매부서에서 잔뼈가 굵으셔서 그런지 판매자의 약점을 잘 간파했고 이를 십분 이용, 판매자로 하여금 결국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마치게 하는데 능통했으며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회의석상에서도 감정이 상하면 이를 숨기지 않고 얼굴을 붉히면서 거침없이 화를 내셨고 아예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놓고 무시하는 등 저를 비롯하여 많은 판매자들은 이분이 빨리 은퇴하시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이분은 은퇴하셨는데 은퇴 후 본인 이름으로 회사를 차리셨고 저를 비롯하여 거래관계가 있었던 업체들에게 연락하며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아시겠지만 회사를 나가 독립을 하면 조직이라는 보호막 없이 그야말로 허허벌판에서 시작해야 하며 과거의 인맥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분의 강압적인 스타일에 고통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과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할 생각이 없었으며 다른 업체들도 저와 별반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전시회에서 그분을 뵈었는데 혼자 전시장 구석에서 외로이 식사를 하고 계시더군요. 한때는 구매 총괄 중역으로 떵떵거리시다가 노쇠한 얼굴로 외로이 혼자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부정적인 감정이 사그라들고 측은지심이 들어 그분에게 인사를 건네었는데 무척 반가워하시더군요. 이를 계기로 독립한 그분의 회사와 비즈니스를 시작했는데 큰 비즈니스는 없었어도 소소하게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부고를 접해 놀랐습니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70대 중반이면 아직 가실 나이는 아닌데 안타깝습니다.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덮을 만큼 긍정적인 기억을 함께 만들고 있었기에 더더욱 안타깝습니다.
부고 메시지에 100여 개가 넘는 추모글이 올라왔고 추모글에는 그분의 두 따님이 일일이 고맙다고 답변을 하시는 것을 보니 비록 일찍 가셨지만 자식과의 관계를 비롯, 주변 관리를 잘하시고 간 것 같습니다. 슬라트씨를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