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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라 Sep 06. 2023

프랑스 럭비 선수 출신 거래처

어느 날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자기 이름이 "제리"라고 밝힌 어느 프랑스인이 강렬한 프랑스 억양의 영어로 "정글에 온 걸 환영한다" 라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시장 파트너를 찾고 있었는데 이분이 어떻게 알았는지 제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는 이름을 대면 다 알정도로 큰 독일계 다국적 케미컬 회사의 프랑스 지점 부문장으로, 업계에서 약 20년 정도 근무한 베테랑이었는데 이후 파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의 피지칼과, 악수할 때 그의 동물적인 악력을 느끼고 놀랐습니다.  


키는 약 180 센티정도였지만 비현실적으로 넓은 어깨, 아무리 양복을 입어도 이를 삐집고 나오는 근육의 형태를 보고 범상치 않은 피지컬이라 느꼈는데 알고 보니 역시 대학교 때까지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합니다.  얼굴도 비문명적으로 생겨서  제리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사람이라기보다는 고릴라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의 외모와 덩치가 인생을 살아오며 장점이자 단점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정신이라면 그에게 시비를 걸어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총명한 두뇌와 식견,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프랑스 시장 개척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폴란드까지 저희 제품 판촉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리의 사무실은 프랑스 파리 센강변에 있었는데 약 5층 건물로 기억합니다. 이중 4층까지는 사무실이고 5층은 VIP 식당인데 처음 이 회사에 방문했을 때 VIP 식당에 점심 초대를 받았습니다. 전담 세프의 5가지 코스요리를 센 강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었는데 고급 레스토랑도 아닌 한 회사의 VIP 식당에서, 그것도 센 강을 바라보는 전망에서의 식사라는 고급진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후 몇 년간 사업이 잘 되었으며 그 후 몇 번 이 VIP 식당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시장이 악화되어 양사 간 실적이 저조했을 땐 건물 지하에 위치한 직원용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더군요. 역시 회사란 실적을 먹고사는 조직이며 실적에 의해 평가받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구내식당에서 줄을 서면서 느꼈습니다. 


이후 제리의 사업 부문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었으며 이분도 새로운 회사의 부문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일단 회사가 매각되면 좀 있다가 매수를 한 회사의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서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약 1년 후 제리는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등을 밀려 퇴사를 하게 된 모양새라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리는 역시 불굴의 의지로 다른 회사의 신규 비즈니스 개발 총괄로 다시 일선에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서로 업무 관계가 없지만 나중에 다시 한번 함께 일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제리에 대해 인상 깊었던 것은 보통 거래처들은 저를 Mr. Kim으로 부르는데 그분은 처음부터 저의 성이 아닌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서양인이 하기 어려운 발음일 텐데도 열심히 불러대더니 나중에는 적어도 제 이름만은 거의 완벽한 한국 발음으로 부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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