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대물림되고 전염된다.
엄마는 정말 불쌍한 여자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밖으로만 나돌아서 늘 기다리게 만들고, 그것에 대해서 따져물으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하여 자녀의 교육, 살림 등 모든 경제활동을 엄마 혼자 아등바등 해내야 했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면 재벌가 사람들은 사이가 안 좋아도 돈이라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던데
아빠는 진짜 최악의 남편이었다.
나는 스윗한 남자를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아빠때문이다.
쓸데없이 아무 여자에게나 친절한 그 오지랖이 너무 싫었다.
어린 내 눈에도 아빠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였다.
아빠는 자식에게는 다정했다.
사람들이 딸바보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나를 챙겼다. 엄마는 그 속에서 소외감을 느꼈다. 나도 덩달아 엄마 눈치를 보게 되었고 왠지 아빠랑 친한 것이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는 아빠에게 당한 폭력을 자식인 나에게 그대로 행사했다. 어린 자녀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다. 엄마는 4명의 오빠들에게도 폭력을 당했다.
엄마는 남편에게도 폭력을 당했다.
엄마는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이해할 수는 없다.
나도 심한 학대와 폭력을 당했지만, 나는 절대 사람을 때리고 싶지 않다. 내 원수를 눈 앞에 데려다 놓는다고 해도 때리고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키우던 강아지가 나를 물어서 너무 놀라, 한대 찰싹 때렸던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해서 나는 두고두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원망을 딸들에게 쏟아냈다. 엄마가 나를 딸이 아닌 여자로 질투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설마 그럴리가..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실제로 아빠에게 '어린 X(우리 언니)이랑 있으니까 좋냐' 라고 말한 적이 있다.
후에 그것에 대해 엄마에게 얘기했을 때
그땐 아빠랑 싸우느라 제정신 아니라서 한 소리라고 했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내가 특목고 진학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갔을 때, 엄마는 맹자 어머니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나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꿈을 내가 이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교육하는 것에 있어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엄마는 공부하는 것과 병원가는 것에 대해서는 빚을 내서라도 해야한다는 주의였다.
내가 특목고에 진학한 후 명문대를 갈 수 있었던 것에는 엄마의 공이 크다.
그러나 차라리 나는 엄마가 그냥 편안한 엄마였더라면.. 나 공부 서울로 보내주지 않아도 그냥 여느 가정의 엄마처럼 보통의 엄마이기만 했다면 난 그게 더 좋았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엄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난 표정, 소리지르는 모습, 나를 때릴 때 보였던 포악했던 눈빛 이런 것들이다.
엄마의 포근함이나 자상함 이런 단어는 나에게 있어 책에서나 나오는 말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상간녀로 추정되는 여자의 집에 어린 우리를 데리고 처들어 갔다. 난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근처도 아니었고 한시간 넘게 걸리는 다른 지역이었다. 나는 그 지역의 명물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사회 시간에 구미는 전자, 창원은 기계, 포항은 제철 이렇게 외웠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그 지역은 '아빠의 상간녀가 사는 곳'이다.
엄마는 지금 70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설을 맞이하여 나는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자식은 신이 맡긴 귀한 손님이라는 말도 있는데 엄마는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같다고 감정적으로 화부터 내지 말고 침착하게 생각을 하고 대화로 풀어가려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어색해도 상냥하게 말하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고 40이 다 되어가는데도 난 아직 엄마가 무섭고 엄마가 막말을 할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고
정말 감정 빼고 자세하게 긴 글을 적어 엄마에게 보냈다.
난 엄마가 조금이라도 깨닫길 바랐는데 돌아온 건 엄마의 비아냥이었다.
맞아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지. 내가 또 잊었네. 자존심을 짓밟고 모욕감을 주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지. 왜 난 또 뭘 기대해서 또 이렇게 실망을 할까.
엄마는 변하지 않는구나
나이가 들면서 힘이 약해지면 좀 덜할 줄 알았는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나는 언제까지 엄마를 참아야 할까.
정신과에 들러 약을 타고, 스타벅스에 앉아 딸기라떼를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정처없이 그저 걷고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