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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삶: 나의 집으로 가는 길

대륙을 넘나드는 한 한국 입양인의 소속감 찾기

by Lee Anne

어느 곳도 진짜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집을 내 안에 짓기로 했다. 경계 없는 삶. 그것이 나만의 길이 되었다.

이런 삶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이 경계 없는 삶이.

아마 모든 것은 내가 6대 세계 메이저 마라톤(런던, 베를린, 뉴욕, 보스턴, 도쿄, 시카고)을 달리겠다는 꿈을 쫓으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여정은 2021년, 내 파트너가 세상을 떠난 후 시작되었다. 나는 슬픔을 달리고, 도시를 넘고, 결국 자유로워진 나 자신에게 도달했다.

내 삶은 아메바처럼 변했다—형태 없이 흐르고, 고정된 경계 없이 계속 움직였다. 그 사이 나는 6번 이사했다: 라구나 니겔, 라구나 비치, 선셋 비치, 파크 시티, 데이나 포인트… 그리고 지금은 그 사이 어딘가, 스웨덴, 한국, 미국.

이제 나는 차도, 가구도 없다. 나는 캘리포니아 데이나 포인트에서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25파운드 분량의 서류, 사진, 노트북을 $300에 배송했다. 더 이상 물건이 나를 붙잡지 않는다. 움직임이 나를 지탱한다.

어쩌면 한국 입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이런 삶의 방식에 날 준비시킨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방식이야말로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일지도 모른다.

나는 12살이 될 때까지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 후에야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나는 '외국인'이라는 의미를 알기 전에 이미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최근 51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나는 아직 한국 국적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F4 비자를 신청하려면—재외동포 및 입양인이 한국에서 장기 거주하고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특별 비자—그 국적을 공식적으로 포기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했고, 이제 3개월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평생 방문자였다. 항상 주변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아마도 어느 한 곳에서도 완전히 속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정말로. 사랑을 만났으니까.

지난 9월, 나는 생후 처음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때, 톰을 만났다. 그도 한국 입양인이고 몇 개월 전 처음으로 한국을 다시 찾은 상태였다. 우연히 시작된 만남은 인생을 바꾸는 사랑이 되었다. 그는 나의 집이다. 소유의 의미가 아니라, 뿌리를 내린 감정, 영혼이 자신의 반쪽을 만났다는 깊은 실감으로.

나는 나만의 집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전통이 아니라 선택으로 가족을 만들었다. 내 집은 내가 세 나라에서 쌓아온 공동체에 있다. 내가 소유한 것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내가 깨달은 건 이거다:

집은 물리적인 주소가 아니다.
벽이나 가구, 지도 위의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집은 색이다.
한국 산책로의 짙고 믿기 어려운 초록빛.
서울 야시장의 네온빛.
스웨덴의 오후 햇살이 비치는 카페 창가의 황금빛에서 친구들과 끝나지 않는 점심을 즐기는 fika의 풍경.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요가 매트를 펼칠 때의 분홍빛 새벽.

집은 연결이다.
내가 가장 좋은 부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그들로부터 최고의 것을 받는 것.
웃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웃고,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깊이 경청하는 것.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걸어온 두 마리의 사랑스러운 카바푸 자매, 애디와 엘라—언제나 곁에 있는 사랑의 증거.

집은 지금 이 순간이다.
세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느끼는 것.
잃어버린 조각들을 다 찾지 않아도 온전함을 느끼는 것.

나는 더 이상 길 잃은 아이가 아니다. 내 집은 이제 내 존재 그 자체다.

이것이 경계 없는 삶의 의미다.
어디에나 속하고,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집을 짐 안에가 아니라 내 몸과 숨, 그리고 나의 변화 속에 품고 다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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