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부품이 되겠습니다
눈이 내렸다.
차를 산 이후로 눈이 내린 건 처음이다.
도로 위 바퀴들이 미끄러지고 인도 위 걸어가는 사람과 동일한 속도로 굴러갔다.
먼발치에서 구형 무쏘가 보였다. 사장님 차다.
이미 불 켜진 주방으로 들어섰다. 지각이다.
“씨발, 미친 거예요?”
“죄송합니다. 차가…”
“씨발.”
나는 어제 넣어둔 바게트 반죽을 꺼내 주방 도마에 올렸다.
바게트 반죽통 밑바닥을 싹싹 긁어 도마에 펼쳤다.
180g.. 180g.. 180g.. 179g.. 180g..
“저 두통 때문에 먼저 퇴근할게요. 내일 예약 건 8판 만들면 돼요.”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불 꺼진 홀 뒤편 주방,
혼자 남아 케이크를 만들었다.
고작 한 달 일한 나 따위가 혼자 남아 케이크를 만들 자격이 있나? 영광이다
꽉 찬 주차장 앞 건널목에 차를 댔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인사하는 나를 흘겨보고는 창고 문을 닫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나는 사장님에게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음식 냄새나니깐 치워요.”
점심에 먹을 냉동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니 냉동도시락 비닐사이로 음식 냄새가 올라왔다.
내 밥냄새는 사장님 코끝에 거슬리는 음식물이었다.
나는 그 후로 도시락을 챙기지 않았다.
점심은 건너뛰고 퇴근하면 부리나케 주방으로 들어가 입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욱여넣었다.
새벽 4시, 침대를 뒹굴며 아픈 배를 부여잡았다.
“좀 더 경과를 지켜보셔야 될 거 같아요.”
응급실에 갔지만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사장님, 몸이 안 좋아서
오늘 하루 쉬어야겠습니다.’
‘크게 아픈 거 아니면 오후에 잠깐 나와서 레몬케이크 좀 만들고 가줄래요?’
사장님한테 답장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