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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녀 K May 31. 2023

9. 외출 좀 하자

엄마는 연예인 타입

드라마에서나 봤던 남 이야기가 지화자 여사의 머리에서 일어났다.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지 여사의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화장실을 쓰는 장녀 K는 하수구에 솜뭉치처럼 쌓인 엄마의 머리카락을 봤다. 의아하게도 지 여사는 가족들에게 머리카락 빠진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순간 유방암을 앓고 있는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 머리카락이 빠지면, 가장 예쁜 가발을 사드리세요. 나는 백화점에서 두 개나 맞춰 썼어요.’


엄마 몰래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가발을 사러 가자고 했다.


“요즘 엄마를 보고 있으면, 우울증도 있는 것 같아. 잠시라도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면 좋을 텐데 …. 머리카락 빠진 게 뭐 어때서? 모자 쓰면 될 것 같은데 ….”


지 여사가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를 대비하여, 자매는 가발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동생 효주가 인터넷으로 간단히 서치를 했다. 시니어 가발을 판매하는 곳을 중점적으로 뒤졌다. '수제 항암 가발, 정수리 가발 판매'


"언니, 이런 게 있었나 봐. 심지어 장사도 잘 되는 것 같아."


전화 통화를 한 다음 날, 자매는 엄마가 이모와 함께 있는 틈을 타서 백화점으로 향했다. 백화점 한편에 가발 코너가 있었다. 장녀 K가 자주 왔던 곳인데, 그간 가발 코너가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매장 의자에 앉아 장녀 K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는 사이, 지 여사의 취향을 잘 아는 동생 효주가 가발을 고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나중에 이런 데로 정수리 가발 사러 오는, 그런 날이 있겠지?"


"그러지 않을까?"


엄마의 암은 자매로 하여금 노후에 대한 현실적인 상상을 자극했다.


"엄마 다 나으면, 나도 가끔 쓰고 다닐까 봐. 가격이 꽤 나가네. 그리고 생각보다 예쁜데?"



거울 앞에 선 동생 효주는 가발 쓴 자신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좋아하고 있었다. 결혼을 일찍 해서일까,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깊었던 효주가 오늘따라 신이 났다. 평소 대화를 나눌 기회도, 그럴 필요도 없었던 자매는 엄마의 암 때문에 조금씩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종일 방에 박혀서 침대에만 누워 있는 지 여사를 보고 있자니, 장녀 K는 엄마 지 여사의 MBTI가 궁금했다. MBTI는 요즘 유행하는 성격 유형 검사이다. 장녀 K는 인터넷으로 간단하게 18분 정도 걸리는 것을 찾았다. 평소 지 여사는 확실히 기분파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형인지, 사람들을 만나야 에너지를 얻는 외향형인지를 알고 싶었다. 장녀 K는 엄마의 침대 발치에 자리를 잡고 검사를 시작했다. 지 여사는 대답도 힘든지 곧바로 짜증을 냈다.


아프기 전, 지 여사의 이야기이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다고 갑자기 무리하게 일을 해서 끙끙 앓아 누었고, 어떤 날은 백화점 문화센터의 영어 수업 후 필요 없는 물품들을 잔뜩 쇼핑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장녀 K는 이런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딸로서 엄마를 좀 더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론 엄마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추천하고 싶었다.


"엄마, 2분만 더 하자. 금방 끝나. 당신은 주기적으로 새로운 친구를 만든다. 그런 편이야? 아니야?"  


"야, 야. 힘들어. 안 해, 안 해"


싫증 내며 뒤돌아 누운 엄마로부터 겨우겨우 알아낸 지 여사의 성격 유형은 'ESFP’, 자유로운 영혼의 연예인. 하, 어쩐지. 장녀 K는 그 대척점에 있는 'INTJ'이다. 사사건건 엄마 지 여사와 맞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암튼, E 타입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힘을 얻는다. 현실은 지화자 여사가 남들에게 자신의 휑한 머리를 보여주기 싫어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 코로나까지 지화자 여사의 외출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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