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에 끌려 다니다.
엄마 지 여사는 다행히 수도원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여기 주방 자매님이 경상도 분이신가 봐."
"어떻게 알아? 뭐가 다른가?"
"알지, 왜 모르냐."
수사님들이 있어서일까, 친절한 분들 사이에서 지 여사는 부쩍 안정감을 찾는 듯했다. 장녀 K가 미술감독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의 녹화 날이 열흘 앞으로 훌쩍 다가왔다. 언제 돌아갈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지 여사는 서울에 있는 하나뿐인 손녀를 끄집어내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장녀 K는 그동안 참았던 짜증을 터트렸다.
"걔가 고아야? 걔 부모가 돌보고 있는데 왜 엄마는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여기까지 와서 하고 있어? 엄마의 암은 그 걱정하는 습관이 만든 거야. 그걸 모르겠어?"
아예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니다. 돌아가신 외조부를 비롯해 엄마의 팔 남매 중 누구도 암은 없었다.
"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아주 나쁜 년!"
지 여사의 코가 빨개졌다. 장녀 K는 엄마의 암과 일에 붙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때마침 왕잠자리 한 마리가 창문으로 들어와 거실 벽에 머리를 박으며 날개를 퍼덕였다. 장녀 K는 엄마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지만, 실상 잠자리를 보며 딴생각에 빠졌다.
'내가 창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말라죽겠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길을 잃고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만난다. 암 앞에 어쩔 줄 몰라 몸부림을 치는 모녀, 잠자리와의 쓰리 샷. 왕잠자리의 날갯짓 소리와 모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한동안 뒤엉켰다.
사실 장녀 K는 엄마의 암에 마냥 끌려 다니는 것이 버거웠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픈 엄마와 함께 없는 시간을 보내며 마감이 임박한 작업들을 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음 날, 그곳에 잠시 머문다던 수녀님은 요양보호사를 보내 주는 제도가 있다고 장녀 K에게 알려 주었다. 먼저 의료보험공단에서 엄마의 상태를 확인한다고 했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장녀 K는 앞으로 엄마의 점심을 챙기려고 작업실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의료보험공단에 요양보호사 파견 신청은 귀경 후 첫 번째로 챙겨야 할 일이 되었다. 제발 한 달 만이라도 누군가 엄마의 환자식을 챙겨 줄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멘붕 상태에서는 그저 두려울 뿐이다. 조금이나마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차분히 다음 일을 준비할 수 있다. 지 여사는 장녀 K와 수도원에서 대판 싸운 후, 뭔가가 해소되었는지 수도원이 편하다며 일주일을 더 머물자고 하셨다. 그때까지도 병원에서는 입원 연락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