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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녀 K May 10. 2023

6. 한 달 만이라도

요양 보호사를 지원해 주세요.

제주도에서 서울로 돌아온 장녀 K는 그동안 미뤄뒀던 원고와 녹화 일정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뭘 하던, 전과 달리 마음에 돌덩이 하나가 올려진 기분이었다. 또한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에서 엄마의 병이 모든 것을 밀쳐내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밤늦게까지 원고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는 간병인이 되어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아침을 맞이했다. 병원에서 입원 연락이 와야 한 시름 놓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불안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으으으으으…. ’


본능적으로 신음 소리를 따라가 보니, 현기증에 넘어져 변기와 벽의 틈 사이에 낀 지 여사가 보였다.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인지 지 여사의 어깨가 끼어, 불행 중 다행으로 뒤통수가 바닥에 닿지 않아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장녀 K는 눈앞에 펼쳐진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웃음이 터졌다. 이내 축 늘어진 채로 변기와 벽 사이에 꽉 끼어 있는 엄마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겨우 엄마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며, 병든 엄마가 잠시라도 혼자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장녀 K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용인 이모에게 요양보호사를 어떻게 신청하는지 전화로 물었다. 용인 이모는 의료보험공단에서 노인 장기요양심사를 할 때의 주의 사항을 세세히 알려 주었다. 지원을 받는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환자는 의식이 거의 없어야 했고, 옷을 스스로 입지도 못하며 식사를 스스로 챙기지 못해야 한다. 지 여사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빼고는 다 해당되었다.


"효정아, 억수로 힘들지? 지원 반드시 받아내라, 응? 그 일 너 혼자는 절대로 못한데이."


"이모, 엄마 의식은 있어. 이모가 말하는 상태는 죽기 직전 아니야? 지금 필요한 건 엄마 병을 이해하고 챙겨 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냥 가사도우미를 부르면 안 될까?"


이모는 간병하는 사람도 살아야 한다며, 요양보호사 신청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코로나 시국은 심사 직원 파견마저도 지연시켰다. 그동안 장녀 K와 지 여사는 요강이며 보행보조기구 등을 집에 가져다 놓았다. 심사관 앞에서 체면을 차린다고 지 여사가 벌떡 일어나는 일이 없어야 했다. 장녀 K는 엄마 지 여사가 최대한 고통스러웠을 때를 떠올리며 몸 상태를 설명하기를 바랐다.


일주일이 훌쩍 가고, 기다리던 공단 직원이 방문을 하는 날이다. 벨소리가 났다.


"엄마, 실수하지 마. 아까 연습한 거 생각 안 나면 그냥 피곤하니까 어서 돌아가 달라고 그래. 그리고 오버하지 말고. 파이팅! 문 연다?"


지 여사는 자신의 상태를 느릿느릿 심사관에게 설명했다.


"항문 근처에 암 조직 검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식사를 하는 게 너무 두려워요.... 어지럽고 무섭고. 내가 왜 이런 병이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흑흑."


"네네, 어르신 너무 힘드시죠."



사실 엄살이 아니었다. 한 공간에서 이 모든 일들을 다 보고 있는 장녀 K는 항문까지가 소화기관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닿았다. 입으로 먹은 음식이 매번 항문까지 무사히 배출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신비 그 자체이다.




지 여사의 눈물 어린 호소에도 불구하고 요양사 지원은 받지 못했다. 장녀 K가 추측 건데, 방사선 치료 종료 후 3개월이 지나면 병세가 호전될 수 있다는 말에 지원을 못 받은 것 같았다. 어쩧든 지 여사는 얼굴 못 본 지 20년이 다되어 가는 3번째 언니를 구미에서 불러 올렸다. 지 여사는 아홉 남매 중 6번째이다. 장녀 K 자매는 지 여사에게 가사 도우미를 불러 식사만 챙기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혼자된 셋째 언니를 보고 싶다는 지 여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모도 할머니인데 엄마 간병을 한다고? 그래....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자.’



구미 이모는 고향의 반찬을 바리바리 싸 오셨다. '가죽나물'이라는 참죽나무 햇순을 따서 만든 장아찌부터 어린 시절 지 여사가 먹었던 음식들이다. 지 여사는 훌쩍거리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서울에서 자란 장녀 K에게는 색다른 음식일 뿐이다. 하지만 지 여사에게는 엄마를 느낄 수 있는, 그리운 경상도 음식이었다.


이렇게 지화자 여사는 33번의 방사선 집중 치료를 위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나름 마쳤다. 장녀 K는 처음으로 자매가 많은 지 여사가 부러웠다. 위기 속에서 뭉친다고, 엄마의 병 앞에서 다르게만 느껴졌던 동생 효주와 마음이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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