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녀 K May 17. 2023

7. 니 아빠 때문이야

원망의 뫼비우스 띠

코로나 시국에 병원 스케줄이 꼬여 버렸다. 확답을 기대할 수 없는 입원 날짜. 무작정 병원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에 지화자 여사와 가족들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지 여사는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신체적 고통과 불안감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갔다. 장녀 K는 지 여사의 히스테리에 오히려 더 침착해지려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도 이모들은 돌아가며 비는 날 없이 엄마 지 여사를 찾았다. 덕분에 아빠 김필두 씨도 밥을 굶지 않았다.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집에 들어오면 될 것 같은 데, 오히려 김필두 씨는 더 열심히 따박따박 일찍 집에 들어왔다. 동생 효주도 가끔 오후에 회사에서 반차를 내서 엄마를 보러 왔다. 효주는 막내 이모와 함께 엄마의 냉장고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마치 곰팡이의 번식을 연구하고 있는 듯한 반찬통들이 냉장고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녀 K는 엄마의 마음이 이렇듯 넣기만 하고 빼지를 않는 냉장고와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버리고 나니 냉장고 안에 불빛도 보이고 한결 밝아졌다.


'엄마도 이번 일을 겪고 나면 삶에 대한 시선이 더 좋아지실 거야.' 장녀 K는 냉장고 청소 하나로 이런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다 타들어 갈 때쯤, 병원에서 입원 안내 전화가 왔다. 면회도 안 되는 4인실, 드디어 항암치료가 시작된 것이다. 입원은 사실 자매가 예상했던 일정보다 이틀 정도 늦어졌다. 45일간의 집중 항암치료는 2박 3일 입원으로 시작되는데,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하다가 마지막에 다시 2박 3일 입원 치료를 한다. 방사선 치료는 치료기간 중에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15분씩 받는다. 운 좋게도 지 여사는 추석 연휴를 간당간당 피해서 겨우 입원을 할 수 있었다.


입원 첫날. 지 여사의 반찬 투정을 예상한 효주는 출근 한 시간 전, 목동 집에서 밑반찬을 만들어 신촌 대학병원 간호사실에 맡기고 회사가 있는 상암동으로 출근을 했다. 동생 효주가 마치 엄마의 엄마 같았다.





첫 번째 집중 치료 후, 지 여사는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에 띄게 약해진 지 여사는 극심한 항암 부작용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살기 위해 목구멍으로 음식을 겨우겨우 밀어 넣었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통원하는 차 안에서 지 여사는 자주 속을 게워 냈고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소리 내서 엉엉 울기도 했다. 지 여사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하지만 장녀 K는 딱히 엄마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장녀 K, 효주, 김필두씨가 돌아가며 지 여사의 통원 치료를 맡았다.


하루는 지 여사가 잔뜩 화가 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귀가하던 길에, 지 여사가 구토를 참기 어려워 차 안에 구토를 했다고 한다. 한데 김필두 씨가 정작 자신의 아내인 지 여사는 챙기지 않고 자신의 차부터 닦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지 여사는 토 묻은 얼굴과 옷을 입은 채로 귀가한 것이다. 힘이 다 빠져서 우는 소리인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장녀 K도 지 여사의 하소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순간 지 여사가 암 진단을 받은 후 줄곧 하는 말이 떠올랐다.



"이게 다 니 아빠 때문이야!"


평소라면 장녀 K는,

“엄마 남편이지, 왜 내 아빠야? 엄마가 골라서 결혼했지, 내가 시켰어?”라고 바로 쏘아붙였겠지.


사실 김필두 씨의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장녀 K는 눈치 없는 아빠 김필두 씨가 행여나 장손이랍시고 추석명절 제사 음식을 엄마 지 여사 앞에서 운운할까 봐 걱정이었다. 만약 그런 말을 듣는다면, 지 여사가 진짜 화를 내다가 피를 토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전 07화 6. 한 달 만이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