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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이별을 다독일 때

by 여름온기

영상 통화 속 할머니의 모습에 자꾸만 그림자가 드리웠다.

"여름아, 보고숩다."


햇빛에 검게 그을린 손등과는 달리

뽀얗고 부드러운 손바닥이 핸드폰을 쓰다듬자

화면이 깜박였다.

웃고 있는 할머니 얼굴이 화면 속에서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할머니는 그렇게 화면 속 손녀 얼굴을 연신 쓰다듬었다.


"할머니는 여름이가 외국으로 나가는 게 그키 속상혀.

그 옛날, 시집가면 엄마를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보던 시절이 생각나서."


결혼 전에 하셨던 말씀을

영상통화 중에도 또다시 꺼내셨다.

적잖이 속상하셨던 모양이다.


"할머니, 나는 일 년마다 한 번씩 올 테니까

할머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잘 살고 있어.

나랑 약속해, 안 아프고 건강하게 나 기다리고 있겠다고.

나도 할머니 보고 싶어."


할머니가 너무 기다리실까 봐

3개월 뒤면 한국으로 휴가 간다고 차마 말은 하지 못했다.

'곧 갈게 할머니, 조금만 기다려줘.'




한 달 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숨을 잘 쉬지 못하고,

얼굴이 많이 부으셨다고 했다.

'연세가 드셔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시구나.

퇴원하시면 또 영상통화해야겠다.'


그때, 그냥 전화를 할걸. 그 짧은 망설임은 오랜 후회로 남았다.




예기치 못한 할머니의 임종 소식.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얼려버렸다.


비행기표를 알아봤지만

가족들은 몸이 약한 내가 수일 내에 오가면

고생한다며 극구 말렸다.


비행기를 타지 못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날 밤 오랫동안 눈을 감지 못한 것뿐이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고

할머니에게 유독 각별했던 동생의 마음도 걱정돼서였다.


가족들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할머니, 너무 보고 싶고 못 가서 미안해.

너무 사랑해요.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정말 행복했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할머니에게 잘해드린 것도,

할머니에게 못 해 드린 일들도,

우리 엄마 시집살이 시켜서 가끔 할머니가 미웠던 기억들도

구름 한 점 한 점에 띄워 바람에 싣었다.




외할머니는 건강하셨다.

다만 외사촌 언니의 치료문제로

외숙모와 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외삼촌이 혼자 계시는 날이 길어졌다.


시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며느리에게 짐이 될까 봐

요양병원으로 스스로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8년,

그중 낙상사고로 침상에서 5년을 누워 지내셨다.


코로나로 사람을 만나지 못한 시간,

정신은 또렷한데 몸은 움직일 수 없었던 기나긴 시간,

느끼셨을 외로움을 감히 가늠할 수가 없다.

종종 말씀하셨다.

"이제는 천국에 가고 싶다."


움직이지 못해 앙상해진 다리,

썩어 문드러진 발톱을 보며

우린 할머니 앞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가 떠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 달 뒤 외할머니와도 이별을 맞이했다.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 걸까.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곁에 있지 못한 게

이렇게까지 가슴을 아프게 할 줄 몰랐다.


엄마를 잃은 엄마를 위로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을 다 어루만질 수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마음이 불안했다.

'갑자기 또 누군가를 잃으면 어떡하지?

나는 지금 사랑하는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무섭기도 했다.




천국에서 우리 두 할머니는

이제 아프지 않은 다리로

함께 걷고 계시겠지.


우리 가족은 그렇게 말한다.

"친할머니에게는 고통 없이 떠나셨다고 말하고,

외할머니는 장수하셨으니 감사한 일이다."


요양병원에서의 세월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지만,

우린 감사함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세 달 뒤,

나는 외할머니의 수목장 앞에 섰다.


자취방에서 함께 살던 시절,

밤낮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시던 할머니의 무릎도

함께 먹던 야식도,

사랑 어린 칭찬들도 모두 떠올랐다.


나무 앞에 덮인 흙은 아직 뽀얗고 어색했다.

손끝으로 만지니 금세 흩어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

그게 내 마음의 생채기 같았다.


그 일 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았다.

봄과 비, 바람과 햇볕을 버텨낸 흙은

이제 제법 단단하고 거칠었다.


이제는 이별의 아픔은 서서히 그리움으로 바뀌어

두 분은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워하며 오늘도 한없는 사랑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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