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날이야?"
유리로 반짝이는 화려한 건물 앞,
디즈니 영화에서나 봤던 하늘색, 하얀색,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남자아이는 턱시도를 입고, 여자아이들은 예쁘게 화장하고 왕관까지 썼다.
그리고 앞에 정차되어 있던 리본과 풍선이 달린 리무진을 타고 떠났다.
멕시코는 15세가 되면 '낀세아니에라(Quinceañera)' 라고 불리는 성인식을 한다. 그 시기에 2차 성징이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리무진을 타고 도시 전체를 달리며 그날을 만끽한다.
그 리무진은 도로 위 작은 클럽과 다름없었다.
'쿵, 쿵쿵.. 치키치키.'
현란한 베이스 리듬은 리무진에 흥을 불어넣었다.
아이들은 선루프로 머리를 내밀어 춤을 췄다. 턱시도를 입은 소년은 오른팔을 들어 올려
달리는 도로와 광활한 자연을 무대 삼았고, 박자에 맞춰 푸쳐핸섭을 했다.
도로 위 모든 생물을 지휘하는 그 손짓.
그 소년은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에게도 호응을 유도했다.
'앗...!' 멍하게 내향인의 정체성을 떠올리며 2초간 망설였다.
하지만 곧 소년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박자를 맞춰주었다.
소년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같이 해주는 거야?"
"하하, 응. 추월해서 빨리 가자 여보. 조금 민망하긴 하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리무진.
살짝 열린 창문 밖으로 햇빛을 머금은 드레스 자락이 공기 중에 일렁이더니
내 오래된 추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혼 전 출장으로 이곳에 와 있던 남편과 찍은 웨딩사진.
마젠타와 블루, 샛노랑이 어우러진 알록달록한 거리.
혹시 더위에 지칠까, 소매치기를 만나진 않을까,
이른 새벽부터 길거리로 서둘러 나갔던 그날.
삼각대를 세워놓고 포즈를 잡을 때마다
해님 조명과 카메라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던 그때, 흰 트럭이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창문을 내렸다.
순간, 긴장했다.
운전사는 우리를 향해 창밖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외쳤다.
"¡Felicidades (축하해요)!"
맞은편에서 오던 차도, 지나가던 행인들도
가던 길을 잠시 멈췄고, 모두가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해주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다.
타국에서 받는 축하는 어딘가 쑥스럽기도 했지만 잔잔한 행복의 여운을 주었다.
이름도, 사연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사랑이 시작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이따금 옷장을 열어
그 드레스를 펼쳐볼 때면
하얀 천 끝에 그날의 햇살과, 휘파람, 손뼉 소리가
아직도 알알이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그 진심 어린 축하는
'결혼'이라는 새로운 시작에 얼음장 같았던 불안함을 녹여,
단단한 확신으로 무장시켜 주었다.
축복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 사람과 예쁜 가정을 만들어야지.'
'잘 살아야지.'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혼준비를 나 혼자 하게 될 줄은,
예비신랑 없는 상견례를 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