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어른이 된다

마리모 리가와의 ‘아기와 나’

by neveres

표지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통통한 아기 신이와 준수하고 반듯한 형 진이의 모습이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그 만화.


‘아기와 나’


두 번째 나의 사랑하는 책은 무려(?) 만화책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진이와 신이라고 하는 것부터 나의 연륜이 보일 텐데 새롭게 나온 애장판을 전집으로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지만 서도 나에겐 ‘타쿠야와 미노루’ 보다는 역시 ‘진이와 신이’다. 아울러 내 첫 독자인 나의 남편이 한국이름으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게다가…… 도무지 ‘장수’를 ‘곤’이라고 부를 마음이 들지 않는다.



요즘 육아에 대해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성인육아로 서로만 돌보는 우리 부부는 아는 것이 없다. 왜 대한민국 모든 아이가 ㅇ모 박사님 자식도 아닌데 그분의 철학으로 키워지는지도 알 수가 없고 길바닥에서 개땡깡을 부리면 혼쭐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받아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ㅇㅇ하지 않아요~ 그랬구나~ 엄마가 우리 ㅇㅇ이를 이해해 주지 못해 미안해요~.”


는 과연 모든 순간에 해당하는 대처인지도 알 길이 없고 요즘 아이 키우는 엄마들에게 욕 쳐들을 각오로 한마디 하자면 솔직히 약간 코믹하다.


좀 과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2,30대가 되어서도 사회에 나와 “우리 ㅇㅇ씨~ 그랬군요~ ㅇㅇ하지 마세요~ 몰라줘서 미안해요~.”가 필요한 아이들로 자랐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걸까?


잠언을 읽다가 올해 처음 번뜩 정말 이런 구절이 있었다고!? 했던 잠언 23:13 말씀이 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렇다고 말 안 듣는 아이를 문자 그대로 채찍질을 하란 소린 아니다.


육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 가만히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이쯤 해두자.




‘아기와 나’는 서른 중반의 아빠가 초등학교 5학년 첫째 아들과 두 살 배기 둘째 아들을 두고 교통사고로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만화책의 시작은 이 가족이 아이들 엄마를 잃은 시점이다.


작가는 이 가족을 동정의 대상으로도 특별한 사람들로도 그리지 않는다.


지금 시대로 치면 아직 젊은 아빠는 직장에서 한창 활발하게 일해야 하는 중간 관리자 입장이고 집에는 아직 보호와 양육이 필요한 두 아이가 있다. 상사는 IT 회사임에도 컴퓨터 작업을 못해서 대신해야 하는 상황이고 아래 직원들은 미숙해서 사고를 치거나 관리가 필요하고 손이 많이 간다.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양가 조부모는 모두 돌아가셔서 도움 받을 사람도 없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와 함께 채우는 건 초등학생 ‘진이’다.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어린이 집에서 동생을 데려오고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집에 돌아오면 동생을 돌보며 숙제를 하고 아빠를 도와 저녁준비를 한다.


작가는 ‘신이’를 마냥 귀여운 아기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엄마를 잃은 아기는 하루 종일 울어대고 이웃은 아기를 좀 더 잘 돌보면 울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도 아직 아이인 ‘진이’에게 싫은 소릴 해댄다.(물론 이웃에서 이 가정에 종종 도움을 주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동생은 귀엽지만 육아는 힘들다. 사랑하지만 버겁고 예쁘지만 밉상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들켰을 때 미안하고 칭얼거린다고만 생각했던 아기가 “엄마“를 작게 부르며 우는 걸 보고 알았다. 동생도 쓸쓸했다는 걸......


‘신이’를 돌보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아빠와 형은 필사적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적인 희생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빠는 진이에게 진이는 아빠에게 “기대도 좋다. 혼자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말이 서툰 간신히 뒤뚱뒤뚱 걸음마를 하는 신이조차도 진이에게 의지가 되고 아빠에게는 이 두 아이가 버팀목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짐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기를 원하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모두가 서툴고 결핍이 있을지언정 그들은 ‘불쌍’ 하지 않다.


그들을, 그 가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엄마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불쌍한 아빠, 동생 돌보느라 제 시간이 없는 아이. 엄마 없이 크는 아기.”라며 동정하지 않는다. 아빠가 아이들과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도 초등학생 아이가 동생을 데리러 가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그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일 뿐이다.


애써 ‘진이’를 불쌍한 녀석으로 동질감과 우월감을 채우려 하는 아이에게 ‘진이’ 친구 ‘철이’가 말한다. “신이가 진이에게 불행의 씨앗인것 처럼 말하지 말라!“고 ”진이는 신이가 있어서 행복한 거야!“라고.


대가족이어서 본인도 상당부분 동생들을 맡아 보살펴야 하는 철이의 말은 이 아이들의 마음을 잘 대변한다.

“항상 (동생들이)싫어. 성질나면 더 한말도해. 그렇게 안하면 사람 맘을 몰라. 그렇지만 그건 그때 당시의 마음이고 실제로 (동생들이) 없어지면 싫겠지.”



‘아기와 나’는 아빠와 형의 ‘육아일기’인 동시에 세 가족의 ‘성장일기’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된 아빠는 직장과 육아, 살림을 병행하느라 바쁘지만 아이들과 함께 짐을 나눠 가질 줄 알게 된다. 직장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잘해나가고 누군가에게 애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동네에서 좋은 이웃으로 성장해 간다.


진이는 동생을 돌보고 살림을 해내느라 바쁘지만 공부도 운동도 노력파다. 그러는 사이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고 성장한다. 그리고 진이를 성장하게 하는 커다란 요인은 신이다.


어느 날 엄마가 사라졌고 남겨진 아빠와 형에게 서툰 보살핌을 받지만 아직은 엄마가 그리운 아기 신이는 ‘아기’ 답게 자라고 ‘아이’로 성장한다. 엄마가 없어서 불쌍하냐고!? 이 아기에게 불쌍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들은 사랑하는 아내, 엄마를 잃은 것에 충분히 슬퍼하고 그 마음을 쓰지만 결코 서로를 ‘불행’하게 두지 않는다. ‘함께’하기에 슬프고 때로 지치지만 ‘행복’하다.



만화의 큰 축은 이 가족의 이야기지만 주변의 이웃들과 친구들, 직장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부모와 자식, 선생님과 학생, 이웃 들간의 이야기가 즐겁고 감동이 있다.




추운 겨울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하게 느껴지고 나처럼 요즘 아이들이 무서워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만화를 추천한다.



그 잔잔하고 담담한 이야기가 가슴이 따뜻해지고 웃음이 나다가 눈물 나게 하는 만화책.


‘아기와 나’


이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기‘ 신이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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